정신과는 처음인데요;; #9
사람들은 완곡하고 부드러운 표현을 위해 정신질환을 ‘마음의 병’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하지만 사실 대부분의 정신질환은 몸의 병입니다. 하지만 마음이 약하면 생기는 병이니 마음을 굳게 먹으라든지 의지로 극복할 수 있다는 잘못된 충고를 듣기도 하죠.
정신질환은 뇌의 병으로 마음이 약해서 걸리는 병이 아니고 마음을 굳게 먹고 다짐한다고 낫는 병도 아닙니다.
우리 뇌 속을 들여다볼까요? 뇌 속에는 생각과 감정을 만드는 수많은 전기신호가 오갑니다. 이 신호를 전달하는 것이 바로 여러 가지 신경전달물질인데요. 이는 일종의 호르몬과 같은 작용을 합니다. 호르몬이 몸속을 흐르면서 생체작용을 조절하는 것처럼, 신경전달물질은 뇌를 구성하는 신경세포를 타고 흐르며 생각과 감정을 조절합니다. 정신질환은 이러한 신경전달물질의 생성과 전달에 문제가 생긴 것입니다.
왜 문제가 생기는 건지는 아쉽게도 아직 뚜렷하게 밝혀진 원인이 없습니다. 어떤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특정 신경전달물질이 과도하게 혹은 모자라게 생성됩니다. 또 어떤 사람은 특정 신경전달물질에 민감하고 어떤 사람은 둔감합니다. 체질의 문제로 볼 수도 있죠. 마치 어떤 사람은 술을 조금만 마셔도 얼굴이 빨개지고 어떤 사람은 보드카를 마셔도 멀쩡하듯, 신경전달물질의 생성과 전달 체계 민감도 등은 대개 유전의 영향을 받습니다.
유전 못지 않게 환경의 영향도 존재합니다. 스트레스가 과도하게 쌓이면 정신질환이 발생할 확률이 높습니다. 하지만 스트레스 때문에 없던 병이 생기는 게 아니라 보통은 정신질환에 취약한 요인을 갖고 있는 상태에서 스트레스가 촉매가 되어 증상이 발생한다고 합니다.
비유하자면 한 사람은 스트레스를 견딜 수 있는 수치가 100이라고 하고 수위가 100을 넘으면 물이 흘러 넘치는 물컵과 같다고 생각할 때 정신질환자의 물컵은 이미 70이 차있는 상태입니다. 30의 스트레스는 보통 사람들에게는 별거 아니지만 환자는 합계 100이 되어 병이 발생합니다. 다른 사람들은 잘 버티는 스트레스에 어떤 사람은 견디지 못할 만큼 힘들어하는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죠.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정신질환은 성격이나 환경에 기인한 막연한 ‘마음의 병’이 아니라 나의 선택과 상관없이 발생한 생물학적 원인이 있는 ‘몸의 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