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과는 처음인데요;; #19
약을 점차 줄이고 줄이고 또 줄였는데도 증상이 없는 평온하고 기쁜 나날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다 갑자기 ‘재발’이라는 녀석이 찾아왔더라고요.
저처럼 좋아진 상태에서 다시 나빠진 경우 속상하고 막막할 겁니다. 전문가들은 재발의 이유를 찾는 게 급선무고 새옹지마라는 말도 있듯이 재발을 잘 대하면 회복에 더 가까워질 수도 있다고 하죠. 글쎄... 하지만 저는 재발의 이유가 뚜렷이 있을 때랑 재발의 이유가 딱히 없을 때가 있었습니다. 마치 처음에 발병하는 것도 이유가 분명치 않은 것처럼요. 그렇더라도 그냥 손 놓고 재발이 될까 말까 걱정하는 것보다는 내가 겪은 재발을 잘 관찰해 앞으로 더 잘 대처하도록 노력하는 것은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재발이라는 녀석이 찾아왔을 때 첫 번째로 고려해야 할 것은 치료가 꾸준히 잘 진행되었나입니다. 점점 증상이 사라지고 평소의 삶으로 돌아오면 아무래도 치료에 대한 관심이나 노력이 줄어들 수 있습니다. 그러다보면 잘 챙겨먹던 약도 하루, 이틀 빠뜨리게 되기도 하죠. 약물 치료는 증상을 호전시키기 위해서만 아니라 재발을 막기 위해서도 꼭 필요합니다. 증상이 있을 때는 스스로 약을 챙겨먹게 되지만 좋아진 상태에서는 약을 먹어도 뭐 달라지는 게 없다고 느끼게 되죠. 그래서 약의 중요성을 등한시하고 안 챙겨 먹을 수 있는데 유지 치료기간에도 약물 치료는 매우 중요합니다.
약은 잘 챙겨먹었는데 사태가 발생했다면 내 생활 습관이 문제일 수도 있습니다. 정말 기본적인 이야기지만 불규칙한 생활 습관은 재발을 불러오기도 합니다.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는 습관, 불규칙한 식사시간, 자기 전에 먹는 습관, 모두 병의 경과를 나쁘게 하는 버릇입니다. 그러니 수면습관과 식사습관이 괜찮았는지 스스로 평가해보세요. 또한 스트레스도 관리가 안 됐다면 재발에 영향을 미치기도 합니다. 스트레스 관리하는 법을 꾸준히 익혀야 해요. 그리고 술. 좋아하시는 분은 눈물이 나오겠지만 병의 경과를 나쁘게 하니 되도록 안 마시는 게 좋아요. 술이 뇌에 영향을 미치고 기분조절 회로에도 영향을 줘서 재발의 요인이 될 수 있기 때문이죠.
약도, 생활습관도 문제가 없다면 치료 경과가 호전되던 중에 발생한 재발일 수도 있습니다. 치료가 잘 이뤄지더라도 병은 재발할 수 있기 때문이죠. 참, 너무하네요. 이때에는 이전에 병의 증상과 현재의 증상을 비교해 강도나 지속시간을 비교해 보아야 합니다. 치료가 잘 되고 있다면 걱정 마세요. 병의 증상도 점차 줄어들 것입니다.
하지만 재발이 이전과 같이 나쁘거나 오히려 더 나빠졌다면 현재의 약물치료를 다시 검토해 봐야 해요. 약의 효과가 부족해서 그럴 수도 있거든요. 따라서 이 경우 담당 의사와 상의해 약물 용량을 증가시키거나 다른 약을 추가하거나 다른 종류의 약을 사용해야 합니다. 내게 딱 맞는 약을 찾는 데는 시행착오가 필요합니다. 조금 버겁고 힘들더라도 약을 찾는 것을 포기하지 마세요. 6월 모의고사 때 한번 실수했다고 9월 모의고사를 포기하는 것과 같은 잘못된 선택은 하지 마세요.
재발의 이유를 찾는 것은 매우 중요한데요 예방을 잘 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죠. 하지만 가끔 재발의 이유를 숨기거나 아예 얘기하지 않는 분도 있습니다. 그러면 적절한 대책을 세우기 어렵겠죠. 재발이 되어 실망이 크고, 자책하고, 원망하더라도 그런 감정을 뒤로 하고 의사 선생님과 함께 재발의 이유를 제대로 평가해야 합니다.
하지만 재발 대책을 세웠다고 해서 다음 재발이 100% 예방할 수 있는 건 또 아니라네요. 그렇더라도 우리는 병보다 더 끈질기게 대책을 세워야 합니다. 재발이 시작하는 시기를 알아차릴 수 있다면 다음 재발을 막기 위해 더 적절한 치료를 받을 수 있습니다.
재발이 시작할 때 나타나는 증상은 전구 증상이라고 하는데 병의 초기 증상과 같다고 보시면 됩니다. 다른 병들과 마찬가지로 초기에 치료하는 것이 더 쉽습니다. 재발이 염려되는 증상이 있다면 잘 관찰해 의사와 상의하십시오. 이런 증상들은 다른 사람들보다 자신이 알아차리기 더 쉽습니다. 만약 타인이 알아차릴 정도라면 이미 심각한 상태인 거죠. 전구증상의 파악은 스스로의 몫입니다. 자신에게 일어나는 변화를 잘 체크하고 의사와 상담하세요. 재발이 염려된다면 외래 예약 시간을 당겨서 일찍 병원에 오는 것도 한 방법입니다. 침착하게 대처하고 괜찮겠지 하고 방심하지 않는다면 일은 잘 해결될 수 있을 거예요 그렇다고 재발을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병에 대한 경험들이 생길수록 병을 더 잘 다스리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노력하신 만큼 점점 더 건강해지실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