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왜 사랑을 꿈꾸는가?
우리는 왜 모두 사랑을 하고 싶을까?
요즘 들어 우리 사회 속에서 그리고 내 주변에서도 자발적 비혼을 선언하는 사람들을 심심치 않게 보는 것 같다.
실제로 얼마 전 한 결혼 정보업체에서 조사한 바에 따르면 39세 이하의 비혼 남녀 중에서 52%가 비혼에 긍정적이라고 답했다고 한다.
이런 모습은 비혼 하면 마치 결혼을 못한 것처럼 여겨져 괜히 죄스럽고 남들보다 뒤처진 것만 같던 이야기가 이제는 조금씩 과거의 이야기로 멀어져 가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렇게 또 우리 사회는 이전과는 또 다른 모습으로 변해가고 있는 중이다.
하지만 비혼을 선언한다는 것이 곧 사랑하기를 거부하는 것은 아니다. 아무리 결혼하기를 거부하고 솔로 라이프를 외치는 사람도 사랑하는 것 자체를 포기하지는 않는다. 혼자만의 자유를 꿈꾸면서도 동시에 누군가와의 달콤한 사랑을 꿈꾸지 않고는 살 수 없는 것이 곧 사람인 것이다.
결국 나 혼자만의 편안함을 추구하면서도 가끔씩 사무치는 외로움에 눈물을 흘리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왜 이렇게 우리는 사랑을 원할까?
왜 시댁의 눈살과 등살에는 강한 거부감을 표현해도 사랑하는 사람의 입술과 따듯한 품은 거부하지 못할까?
왜 그 누구도 나의 삶에 간섭하기를 원하지 않으면서도 때론 나를 향한 무심함에 서운함을 느끼고 가끔은 집착해주기를 원할까?
왜 독립적이고 나만의 삶을 꿈꾸면서도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했던 시간들을 그리워할까?
언젠가 홀로 생각하며 나 자신에게 물어보았다.
그렇게 가끔은 사랑이 귀찮고 혼자가 편하다고 생각하면서도
왜 너는 또다시 사랑을 하고 싶어 하는 거야?
잠시 곰곰이 생각하던 난 내가 사랑을 하고 싶어 하는 이유를 조금은 알 수 있었다.
나도 한 때는 누군가를 사랑했고, 그 사람에게 잘 보이고 싶었고, 그 사람의 모든 것을 맞춰 주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그 사람을 사랑한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아니었다.
사실 나는 사랑을 하고 싶은 것이 아니라 사랑받고 싶을 뿐이었다.
그저 나도 그렇게 사랑받고 싶었기에, 내가 받고 싶어 하는 사랑만큼 그 사람을 사랑한 것뿐이었다.
결국 나는 사랑을 하고 싶은 것이 아니라 내 모습 그대로 나의 허물까지도 사랑해줄 그런 사랑을 받고 싶었던 것이다.
'실수해도 나를 안아주며 괜찮다고 해줄 그런 사랑.'
'내가 저 먼 나락으로 떨어져 있을 때 찾아와 "괜찮아"라고 조용히 속삭이며 등을 토닥여줄 그런 사랑.'
'나의 잘못에도 불구하고 그저 내편이 되어줄 그런 사랑.'
'나는 그저 그런 사랑을 받고 싶었던 것이다'.
누군가는 말한다. 세상에 그런 사랑을 줄 수 있는 사람은 오직 '나'하나 밖에 없다고 그러니 너 스스로를 사랑하라고. 하지만 세상에 오직 나밖에 나를 사랑해줄 이가 아무도 없다는 건 너무 슬픈 일이 아닌가?
그 누구도 나를 사랑해줄 사람이 없어 '나 혼자라도' 나를 사랑해야 한다면 그건 너무 외로운 삶이기에
나는 아니 어쩌면 우리 모두는 오늘도 나를 사랑해줄 그런 사랑을 찾아 사랑을 하고 싶어 하는 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