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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조 Jan 10. 2019

3. 나만의 기준을 정해라

 과거에는 새로운 가치관이나 사상이 다른 사람들에게 전해지는데 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마저도 인쇄술이 발달하기 전에는 지역적으로 전해지는 것에 그칠 뿐이었다. 하지만 인쇄술이 발달하면서부터는 새로운 사상이나 가치관이 지역을 넘고 국경을 넘어서 더 넓게 사람들에게 전해지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책이라는 도구를 통해 과거보다 빠르게 새로운 정보를 접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인터넷의 등장은 이전까지와는 완전히 차원이 다른 세상을 만들어냈다.


 인터넷은 단순히 정보를 전달하는 속도를 넘어 엄청나게 많은 정보의 양까지 동반했다. 그만큼 새로운 정보와 가치관, 사상은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르고 다양하게 퍼져갔다. 그리고 인터넷 이후 스마트폰과 SNS의 등장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새로운 정보와 가치관을 특정한 사람들만의 것에서 개인적 차원의 것으로 바꿔 나갔다. 적어도 이전까지는 어떤 정보와 가치관, 새로운 주장은 주로 각 분야의 전문분야에서 활동하는 전문가들에 의해서 주도되었다. 하지만 SNS는 이를 더 대중적인 것으로 바꿨다.    

   

 오늘날 트위터,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등 사람들이 많이 사용하는 SNS들을 보면 어떠한 정보나 새로운 가치관은 더 이상 유명하고 전문적인 영역에서 종사하는 특정인들에 의해서만 주장되지 않는다. 

 지금은 수많은 사람들이 저마다 나름의 생각과 자신만의 가치관을 SNS라는 가상공간에 말하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이러한 글과 생각은 때에 따라 불과 몇 초 만에 지역과 국경을 넘어서 셀 수도 없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전달되고 또 누군가에 의해서 다시 공유되기도 한다.     


 한 마디로 지금 우리는 역사상 가장 다양하고 많은 양의 정보와 가치관이 공유되고 넘쳐흐르는 세상 속에 살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수없이 넘쳐흐르는 새로운 정보와 가치관들은 우리에게 많은 것들을 접하고 들을 수 있는 다양한 채널을 제공해주기도 하지만 반대로 우리를 더욱 혼란스럽게 만들기도 한다. 왜냐하면 이들 중에서는 서로 반대되며 충돌하는 가치관이나 정보들도 많기 때문이다.     

 

 2018년 초 수많은 젊은이들이 공감하고 열광했던 단어가 있다면 바로 욜로다. ‘인생은 한 번뿐’ (You Only Live Once)이라는 뜻의 욜로는 ‘어차피 한 번 사는 인생 미래에 대한 불안함에 갇혀 사는 것보다 현재에 충실하며 지금을 즐기며 살자.’라는 가치관이 담긴 단어이다. 이런 가치관은 수많은 젊은 세대들에게 공감대를 형성했고 여기서 파생된 욜로 라이프, 욜로족과 같은 새로운 신조어도 생겨나곤 했다. 하지만 2018년 말이 접어들면서 욜로는 조금씩 시들어갔고 욜로와는 정 반대되는 골로라는 단어가 생겨났다. 

 

 골로는 욜로를 비꼬는 말로 ‘욜로 하다간 골로 간다.’는 위트 섞인 말놀이가 담긴 단어이다. 그리고 2018년 말에는 미래를 준비하며 생산성 있게 살아야 한다는 ‘욜로 하다 골로 간다.’ 생각이 다시 사람들의 공감대를 얻기 시작했다. 


 서로 180도 다른 가치관의 변화가 불과 몇 개월 사이에 일어난 것이다. 이는 과거에는 생각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이전까지는 적어도 어떠한 가치관이 새로운 가치관으로 바뀌거나 공감대를 형성하는 데까지 적지 않은 시간이 걸렸다. 하지만 이제는 완전히 반대되는 두 개의 가치관이 바뀌는데 몇 개월 밖에는 걸리지 않는다. 

 이 말은 그만큼 지금 시대는 자칫하면 쉽게 혼란에 빠질 수도 있다는 말이 된다. 그저 아무런 생각 없이 다양한 채널을 통해 들려오는 이야기만 듣고 이리저리 휘둘리다 보면 정작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할지, 어떤 삶의 기준을 가져야 할지, 어떤 인생의 방향성을 가져야 할지 정하지 못하고 갈팡질팡 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언젠가 한 친구가 언젠가 사람들이 SNS에 공유하며 짤막하게 올라온 한 드라마의 부분을 보고 위로를 받았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 내용은 세상을 살아가면서 다른 그 누구의 조언도 듣지 말고 한 번 사는 인생 네가 하고 싶은 대로 네 마음대로 살라는 내용이었다. 그리고 며칠이 지나고 이번엔 그 친구가 한 책을 읽으며 자신이 감명 깊게 읽은 내용을 말해주었다. 


 이번엔 이순신 장군에 대한 이야기였다. 이순신 장군은 항상 자신이 어디에 부임을 하든지 그 부임지에서 자신의 공간을 열린 공간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이 열린 공간을 통하여 지역 주민들의 이야기를 듣고 신하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여러 정보를 취하곤 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듣는 자세는 이순신 장군으로 하여금 전투에서 그 지역만의 특별한 지형과 지물을 이용하여 불리한 전투도 유리하게 이끌어 갈 수 있게 만든 원동력 되었다. 

 하지만 이순신 장군이 정치적 희생양이 되어 감옥에 가있는 동안 이순신 장군 다음으로 부임한 원균은 정 반대의 인물이었다. 그는 이순신 장군이 만들어 놓은 열린 공간을 닫아버렸고 오로지 자신만을 위한 공간에서 그 누구의 이야기도 잘 듣지 않았다. 그리고 그가 전투에서 어떤 결과를 맞이했는지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 것이다. 

 이 친구는 자신이 책에서 읽은 이순신 장군과 원균의 이야기를 하며 앞으론 사람들의 이야기를 잘 듣는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말했다. 


 불과 며칠 전만 해도 그 누구의 이야기도 듣지 말라는 조언에 감동했다고 말했으면서!      

 

 그런데 오늘날 이런 모습들을 우리는 주변에서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수도 없이 밀려오는 여러 가지 가치관과 이야기들을 듣고 있으면 다 맞는 말 같고 때론 거기서 위로를 얻기도 한다. 

 물론 어떤 게 맞고 틀리다고 쉽게 말할 순 없을 것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나만의 기준이 없이 주변에서 들려오는 것들을 그저 다 받아들이기만 한다면 우린 결국 모순투성이가 될 것이라는 사실이다. 


 여러 사람의 이야기와 가치들을 경험하고 듣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그건 아직 나만 기준을 찾으며 세워나갈 때의 이야기다. 적어도 30대라면 이제 나만의 기준과 노선을 어느 정도 정해 놓아야 한다. 내가 가고자 하는 인생의 노선과 삶의 방향성을 구체적으로 정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만약 이런 내 인생만의 기준과 노선이 있다면 우린 주변에서 들려오는 수많은 가치관과 여러 상반되는 주장들 속에서도 나의 기준에 맞는 것들을 선택하여 그것들을 더 발전시킬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 당신이 30대라면 더 이상 ‘이것도 좋고 저것도 좋아. 이것도 맞는 말 같고 저것도 맞는 말 같아.’라고만 말해서는 안 된다. 어쩌면 그것은 ‘난 아직도 나만의 인생과 나만의 길을 찾지 못했어, 난 여전히 방황 중이야.’라고 말하는 것과 같을지 모른다. 30대는 더 이상 그렇게 방황만 하고 있을 순 없다. 


 만약 아직 방황 중이라면 지금까지 살아온 삶의 여러 경험과 나를 돌아보면서 어떤 나만의 기준을 세워야 할지를 생각하고 정해라. 그리고 그다음엔 남은 시간 동안 내가 세운 기준과 노선에 여러 살을 입히며 그것들을 풍성하게 만들어 가야 하는 것이다. 이것에 30대엔 나만의 기준을 정해야 하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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