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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수한 May 19. 2018

<삼삼한 이야기> 그 171번째 끈

잠기다

잠겨 죽을듯이 비가 내렸다. 하늘에서 비가 쏟아져 강물을 불렸다. 불어난 강물 위로는 흰 구름이 반쯤 하늘을 삼켜 넘실댔다. 세상이 물에 씻겼고 나는 이 물가 저 물가로 첨벙첨벙 겁 없이 잠겨 들어간다. 


하나. 한낮

푹 자고 일어나 몽롱한 정신을 빗소리가, 한 잔의 커피가, 적막한 분위기가 깨운다. 가져간 책을 꺼내보아도 좋고 창가 한 켠에 아무렇게나 놓인 책 무더기 중에서 표지만 보고, 제목만 보고 들춰보아도 좋다. 분위기의 마법에 흠뻑 잠긴다.



02 한밤

진한 술에 알 수 없는 무엇 무엇들을 넣은 음료를 천천히 마시면, 짙은 밤 속으로 빠르게 빠져들어간다. 밤은 길고 짧다. 지루한 이야기를 하기에는 길고 좋은 사람과 함께 하기에는 짧은 이중적인 밤의 시간을 잘 가게 해주는 마법의 음료는 밤과 참 잘 어울리지. 



03 잠기다

시간이 많아졌다. 있다 없다 다시 있으니까 더 소중한 게 시간이다. 잉여의 시간, 여유의 시간이 세상에 대해서, 나에 대해서, 일상에 대해서 생각하게 하고 자주 찾아오는 소중한 순간들을 포착하게 한다. 사소한 기록을 위해 펜을 드는 수고도 마다하지 않음은 물론이고. 

그래서 오늘, 내일, 모레 내게 주어진 모든 시간에 잠기려 한다. 발 끝부터 정수리 끝까지 홀랑. 잠겨있는 이모저모를 찾으러 유영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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