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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수한 Oct 14. 2018

사람의 눈, 그 속의 우주

내 눈을 바라봐(?)

사람의 눈을 바라보다보면 사랑에 빠질 수 있다. 미운 사람의 눈을 똑바로 마주하다보면 어느샌가 미움이 녹기도 한다. 눈에는 그이의 우주가 담겨 있고, 그이의 슬픔이 엿보이고, 언어로 전달하지 못하는 감정을 이식받듯 이해할 수 있기도 하다. 그래서 눈을 마음의 창이라고 하나보다. 그래서 허모 씨는 그렇게도 ‘내 눈을 바라보라’고 외쳤나보다.


줄리안 무어의 눈은 아름답다.

눈이 아름다운 이의 눈을 바라보는 일은 즐겁다. 나와 다른 색을 색을 가졌다면 내 눈은 새까만데 네 눈의 색을 왜 갈색이냐고 이야기를 나누는 일도 즐겁다(눈동자 색깔은 멜라닌 색소의 비율에 의해 결정된다). 색깔의 이름을 찾듯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으면 시간 가는 줄 모른다. 눈만 바라보다가 하루가 다 가버려도 좋을 것 같다.

어느 날은 얼굴에서 유일하게 만질 수가 없어 눈이 더 애틋한지도 모르겠단 생각을 했다. 가까이서 보았다가 멀리서 보았다가 거리를 좁혀보고 늘려도보고 눈을 대신해 눈가를 지긋이 눌러보고 눈썹을 만지작거려도보고 속눈썹을 살짝 잡아당겨도보고. 다래끼가 날 수 있으니 더 이상은 그만.


눈이 슬픈 이의 눈을 바라보는 일은 걱정스럽다. 말없이 눈만 바라봤을 뿐인데 슬픈 두 눈에 눈물이 차오르는 사람이 있었다. 조심스럽게 자기 안의 말을 이어 나가는 그의 눈을 보았는데, 처음엔 수줍고 민망한 빛을 띠던 눈에 금세 슬픔이 가득해지고 눈물이 그렁그렁해졌다.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곤 내 눈에 그를 걱정하는 내 진심의 빛이 담기기를 바라는 것뿐이었다. 부디 그 마음이 전해졌기를. 아주 잠깐 동안 눈을 바라보았던, 그래서 단 5분 가량을 알았을 뿐이지만 금세 가까운 사이가 된 듯했던 그 행인에게.


남의 눈을 보다보면 자연스레 이 생각에 미친다.

내 눈은 지금 어떤 빛을 띠고 있을까?
아닌 게 아니라 눈은 정말 우주 같다.

내 눈을 나와 같이 바라보는 사람을 마주하면 속마음을 들킨 듯 부끄러워진다. 겉모습은 꾸며낼 수 있다. 연예인들의 화보에서나 쓰는 용어라고 생각했던 ‘컨셉’은 하루하루의 옷차림, 화장법 등을 통해 만들어낼 수 있는 가상의 하루짜리 내 모습에도 통용된다.

이 ‘컨셉’에 따라 행동과 말씨조차 내가 원하는 모습으로 잠깐은 가장할 수 있지만, 눈빛까지는 어렵다. 연기자들이야 쉽게 해낼지도 모르지만 나는 내 인생의 무대에서 번번이 눈빛 연기에 실패했다. 그래서 솔직한 사람, 아니 솔직하고 싶고 솔직해야만 하는 사람이 되었다. 아무리 꾸미고 숨겨도 사람들이 내 눈을 보면 나는 다 들킬 것이 뻔하니까. 똑똑하지 못해서 거짓말에도 능하지 못하니까. 애초에 있는 그대로를 보여줘야겠다고 생각한다.


대신 내 눈이 동시에 여러 감정을 품고마는 복잡한 심리 중 가장 우세한 감정만을 보여주기를 바란다. 80의 사랑과 20의 증오라면 사랑을, 70의 분노와 30의 두려움이라면 분노를. 적확하게 보여주고 싶다. 그렇지만 또 그것이 어떻게 사람 마음처럼 될까. 다른 사람들의 눈동자를 통해 내가 보는 복잡한 것들을 그들도 내 눈동자를 통해 읽어내겠지. 느껴내겠지.

그냥 더 솔직해져야겠다. 온몸과 정신이 솔직한 사람의 눈이 탁하다거나 정직하지 못하다는 말은 듣도 보도 못했으니까. 그리고 눈으로 전해지는 감정을 더 세밀하게 포착하고, 또 반대로 전해줄 수 있는 사람이고 싶다. 내게 눈이 주어진 이유가 단지 보기 위함만은 아닌 것 같다. 눈은 정말 마음이 오가는 창이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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