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삼한 이야기> 그 58번째 끈

오늘의 세 가지 구입

by 수수한

01 형광펜

드디어 샀다.

행여나 잊을까봐, 플래너에 'ㅎㄱㅍ'이라고 써뒀던 지난 밤을 잊고 현관문 앞에서 잠깐 서성댔다.

'ㅎㄱㅍ...?', 'ㅎㄱㅍ!!!'

신문이 알록달록해졌다.



02 큐카드


발표라니. 체감상 약 58년만인 것 같은 발표를 하루 앞두고 급히 컨닝용 큐카드를 샀다.

꾸며야 하는 자리에서 내용도 형식도 너무 솔직하다.

솔직한 내가 커서 뭐가 될까...하다가 홈런볼을 까먹는다.

'그래, 홈런볼이나 까먹겠지.'

솔직할 생각에 마음이 편한 어느 밤.



03 북극곰이 나오는 신문

위대한 건 기다림이다. 부극곰은 늙은 바다코끼리가 물에 올라와 숨을 거둘 때까지 사흘 밤낮을 기다린다. 파도가 오고 파도가 가고, 밤이 오고 밤이 가고, 그는 한 생이 끊어져가는 지루한 의식을 지켜보며 시간을 잊는다.

그는 기대가 어긋나도 흥분하지 않는다. 늙은 바다코끼리가 다시 기운을 차리고 몸을 일으켜 먼 바다로 나아갈 때, 그는 실패를 순순히 받아들인다.

다시 살아난 바다코끼리도, 사흘 밤낮을 기다린 그도, 배를 곯고 있는 새끼들도, 모든 걸 지켜본 일각고래도 이곳에서는 하나의 '자세'일 뿐이다.

기다림의 자세에서 극을 본다.

근육과 눈빛과 하얀 입김. 백야의 시간은 자세들로 채워진다.

-허연 시인 작


만년설과 북극곰을 상상한다. 얼음장 같던 추위가 한 풀 꺾이고 미세먼지가 찾아온 서울에서, 언제나 겨울인 어느 대륙의 언제나 겨울에 사는 북극곰을 생각한다. 이 존재는 어찌나 겨울 그 자체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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