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소녀
아침, 잠결에 손에 쥔 핸드폰속 아주 반가운 이름이 떴다.
지하철,에 올라타서야 조심스럽게 소녀의 메시지를 읽었다.
피식.
서울의 잿빛 하늘이 한 사람의 느닷없음으로 파랗게 갰다.
저녁, 영화 상영시간까지 남은 시간을 달래러 앞에 놓인 잡지를 읽는다.
흘러가는 트렌드를 훑던 중 아주 싱그러운 소녀의 사진을 발견한다.
눈을 뗼 수가 없다.
반짝이는 눈, 특별한 공기가 숨 쉴 것 같은 코, 귀여운 이가 보이는 입을 보느라 한참의 시간이 지난다.
싱그러움, 젊음, 생기 같은 걸 탐하는 파우스트 박사라도 된 기분.
한 소녀가 죽었다.
이름 한 자도 모르는 소녀가.
한 번 마주친 적도 없는 소녀가.
소녀는 그 밤, 내 문을 한 번 두드렸고, 나는 진료가 끝났기에 그 문을 열지 않았다.
때문에 이튿날 소녀의 죽음을 전해들었을 때 내 영혼도 죽었다.
그녀는 이름도 없이 묻힌 소녀의 이름이라도 알아내기 위해 수소문한다.
찬 땅에 꽃을 올린다.
그 죽음에 단초를 제공한 남자는 숨바꼭질을 하듯 가까워졌다 멀어졌다 뱅뱅 주위를 맴돌기만 한다.
그러던 어느 날, 그가 찾아와 말한다.
"그렇지만 그 얘는 죽었으니 끝난 것 아니오."
"끝이 아니기에 우리가 이렇게 고통스러운 거겠죠."
아주 덤덤한 척, 누구보다 극렬하게 타인의 고통을 느끼는 여자.
영화로 전해오는 덤덤한 고통을 느끼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샛노란 터널 빛을 통과하며 나에게 묻는다.
네 고통은 누구의 것이냐고 묻는다.
너는 네 고통만 느끼고 있지 않느냐고 묻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