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 4] ABC 트레킹의 입성지, 포카라

네팔의 식당에선 정전이 일상입니다

by YEON


나마스떼! 네팔에서의 둘째 날 아침이 밝았다. 우리 팀은 안나푸르나 트레킹의 출발지인 포카라로 향하기 위해 일찍 숙소를 나섰다. 호텔 조식은 기가 막힌 맛은 아니었지만, 맛있는 음식의 스탠더드가 높지 않은 나에겐 괜찮은 식사였다. 한국에서는 위가 작기로 소문난 나인데, 웬걸 네팔에서는 식사를 할 때마다 접시를 비우는 것도 모자라 대원들이 덜어놓은 음식까지 싹쓸이하는 바람에 ‘Dish washer’라는 별명까지 얻게 되었다. (물론, 호텔 조식도 2그릇을 가뿐히 해치웠다.) 짐 패킹을 마무리짓는데, 역시나 처음이라 카고백에 얼마나 들어갈지 가늠이 안 됐던 우리들은 5명이 하나의 백에 달라붙어 지퍼를 잠가야만 했던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했지만, 어쨌든 우리는 포카라로 신나게 출발했다.



하루밖에 있지 않았지만 길거리 상인 분들과 시장을 돌아다니며 만났던 한국분들 덕분에 카트만두라는 도시는 내게 ‘정겨운’ 장소가 되었다. 정겨운 카트만두의 풍경을 뒤로하고, 포카라는 어떤 광경들이 기다리고 있을지 무척이나 설렜던 시간이었다.



버스에 몸을 싣고, 비포장도로를 몇 시간을 달렸다. 그렇게 길을 달리며 만났던 네팔의 크고 작은 산들이 아직도 잊히지가 않는다. 오죽하면 6,000m가 넘지 않는 산들을 보고는 ‘산’이라는 명칭을 붙이지 않을 정도였을까. 그만큼 네팔엔 산들이 정말 많았다. 그리고 그 산들 중턱엔 네팔 사람들의 삶의 공간들이 꾸려지고 있었다. 근처에 마땅한 시설도 없고, 시내까지도 차를 타고 오랫동안 나가야 하는 먼 거리에 살고 있지만, 그 지역만이 풍기는 따스한 느낌이 좋았다. 파란 하늘 밑에 흙들로 뒤덮여 약간은 노랗게 보이는 이 동네는 아이폰의 ‘따스한’ 필터를 씌우면 보이는 세상 같은 느낌이었다.


그리고 버스에 앉아 턱을 괴고 이 동네들을 가만히 보고 있노라면, 내가 지금 누리고 있는 삶이 오버랩되기도 했다. 산 중턱의 환경에 비하면 나는 원하는 곳은 대부분 갈 수 있는, 그리고 필요한 것들을 구할 수 있는 도시 환경에 살고 있다. 하지만 이마저도 불편하다며 불평만 늘어놓고 살아왔던 건 아니었을까. 풍족한 삶을 선물해주신 부모님의 은혜에 감사하기도 하고, 뭉클하기도 하고, 그들이 각자의 위치에서 평화롭게 살아가고 있는 모습이 내가 반성과 위안이 되기도 했던, 복합적인 감정을 흘려보냈던 시간이었다.


그러던 도중 점심 식사 장소에 도착했다는 기사님의 목소리가 들렸다. 주위에 있는 학생들이 모두 모여 식사를 하는 곳인 것 같았다. 한국으로 따지면 공용 급식소라고 해야 할까? 학생들이 정말 많았다. 연두색의 점퍼를 입은 우리들을 보며 낯설어하는 눈치였지만 어딘가 말을 걸고 싶어 하는 듯 보여서, ‘나마스떼’하며 웃는 표정으로 인사를 했다. 역시나 반갑게 맞이해줬던 학생들. 처음 보는 이들이었지만 같은 테이블에 앉아 식사했던 순간이 어느새 추억이 되어버렸다.



현지인들이 애용하는 식당이었던 만큼, 식단도 완전 현지식으로 제공됐다. 고수의 향이 물씬 났던 초메인과 같이 대부분의 메뉴들이 정확히 설명하긴 어렵지만 한국의 것과는 맛이 사뭇 달랐다. 히말라야 트레킹 중 롯지에서 했던 식사들은 세계 각국에서 여행객들이 오기 때문에 호불호 없는 메뉴들을 제공하고 있지만, 이번 식당은 특히나 네팔의 향기가 강했던 식당이라 꽤 기억에 남는다.



그렇게 6시간을 달려 포카라에 도착했다. 카트만두의 정돈되지 않았던 분위기와는 달리, 포카라는 확실히 고급진 관광도시의 인상을 풍겼다. 달랐던 점은 첫 번째, 집들이 완성되어 있었다는 것이다. 높진 않았지만 견고한 건축물들이 많았다. 형형색색으로 도장된 벽들은 그곳의 분위기를 훨씬 포근하고 아기자기하게 만들어주고 있었다. 거리에서 볼 수 있는 쓰레기도 현저히 적었고, 일단 날씨가 굉장히 맑았다. 여러모로 첫인상이 좋았던 도시였다. 네팔에서 가장 큰 호수이기도 한 페와호수를 지나 숙소에 도착했다. 종업원들도 정말 친절하셨고, 숙소에서 묵는 내내 항상 밝게 인사해주셔서 기분 좋은 에너지가 느껴졌던 곳이었다. 조식 먹을 때마다 먼저 인사해주시고 음식도 건네주셨던 분들의 목소리가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호텔에 짐을 풀고, 커피가 땡겨서 대원들에게 옆에 위치한 The coffee에 가자고 졸랐다. 한인분께서 운영하시는 카페로, 포카라를 찾는 국내 관광객들에게 이미 잘 알려져 있는 곳 중 하나였다. 커피도 괜찮았고, 가격도 무난했고, 가장 필요했던 와이파이가 잘 터지던 곳이었다. 개인적으로 카페 한편에 한국 책이 잔뜩 들어있는 서재를 보고 ‘여행 중엔 이곳에 한 번 더 오게 되겠구나’하는 직감이 강하게 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포카라를 떠나기 하루 전에 자유시간을 갖기로 하고 나는 이곳에 앉아 유시민 작가님의 책을 읽기도 했다.


커피도 한 잔 하고, 마니또 미션으로 서로서로 사진도 찍으며 카페에서 시간을 보내다 포카라 탐방에 나섰다. 길거리에서 와플도 먹고, 저녁식사 메뉴도 정하고, 기념품을 뭐 살지 구경도 하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카트만두에서와 비슷하게 길거리에 강아지들이 정말 많았다. 덤벼들지 않을까 내심 쫄기도 했지만, 꼬리를 흔들며 다가오는 강아지들과 함께 어우러지며 그렇게 포카라 길거리를 돌아다녔다.



포카라에 위치한 스테이크 집에서 다 같이 저녁 식사를 했다. 맥주를 한 잔 마시고 싶었지만, 내일부터 트레킹 시작이라 꾹 참았다. 이 식당에선 또 하나의 웃긴 해프닝이 있었다. 밥을 먹다가 정전이 2번이나 났던 것이다. 네팔에서는 상점이나 식당에서 정전이 빈번하게 발생한다고는 하던데, 우리가 외부에서 처음 먹었던 식당에서 정전이 2번이나 발생할 줄은 몰랐다. 예상치 못했지만 불이 꺼진 식당에서 우리는 누가 시작이랄 것도 없이 생일 축하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술집에서 불이 꺼지면 거의 자동으로 흘러나오는 ‘생일 축하합니다’처럼 말이다) 종업원들도 미안하다고 이야기하러 오시면서 웃음 짓는 걸 보니 우리의 문화가 재미있었나 보다. 그리고 또 하나의 생겼던 추억은 식당에서 한국분들을 만났던 것이다. 연두색 옷을 입은 우리들이 귀여웠는지, 음료수도 주문해 마시라고 용돈을 쥐어주시며 그러게 식당을 떠나셨다.


포카라에서도, 산 중턱에서도, 그리고 ABC를 올랐을 때에도 우연한 기회로 여정에 함께 했던 한국 분들의 따듯한 마음을 전해받았던 때가 많았다. 같은 한국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시누와에서는 한국 간식도 주시고, ABC에서는 잠자리를 채워줄 핫팩도 많이 선물 받았다. 처음 보는 우리를 조카처럼 대해주셨던 분들께 이 글을 빌려서나마 감사의 말씀을 전하고 싶다.


유쾌한 식사도 하고, 동네 구경도 하며 늦지 않게 숙소로 돌아와 내일 트레킹 준비를 마쳤다. 드디어, 내일이면 진짜 트레킹 시작이다. 크로커스 대원들 모두 고산병 없이 건강하게 돌아올 수 있길. 우리들의 버킷리스트인 히말라야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에서 즐거운 추억들을 많이 만들고 올 수 있길 바라며.


곧 보자, 안나푸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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