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 12] 안녕, 히말라야

히말라야를 안주 삼아 마셨던 맥주는

by YEON

굿모닝, 시누와 어게인! 벌써 트레킹 마지막 날이 밝았다. 20대 중반이라는 짧은 인생 동안, 가장 많이 걸었던 9일간의 시간들이었다. 시누와에서 머큐까지 약 5시간을 걸어가 지프차를 타면 우리의 히말라야 트레킹은 정말로 끝이 난다. 내려가면서도 믿기지 않았던 여행 12일 차의 아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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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상시와 마찬가지로 우리는 늦지 않게 일어나 트레킹 준비를 하고, 노리쉬의 부름에 맞춰 아침을 먹으러 1층 로비로 내려갔다. 한국에서 먹는 것처럼 맛있는 김치찌개를 주문해 아침을 든든히 먹고 남은 짐을 패킹한 후 마당에 나와 대원들끼리 추억을 기념했다. 한 번 와본 시누와라고 그새 긴장이 풀려 사진 찍는 것도 잊은 채 열심히 식사를 했던 것 같다.


오늘의 코스는 시누와(2,360m) > 촘롱(2,170m) > 간드룩(1,940m) > 지누단다(1,780m)였다. 오로지 ‘하산’이라는 목적 하에 하루를 보냈던 터라 트레킹이 마무리된 후 여행기를 정리하며 지명을 찾아보곤 했는데, 간드룩의 지명은 네팔 카스트 제도에서 불교 신자 중 상층에 속한 계급인 구릉 사람들이 많이 사는 마을이라는 데에서 왔고, 지누단다는 온천으로 유명한 동네라고 한다.


아무쪼록 트레킹의 마지막 동네인 지누단다에서 지프차를 타고 약 한 시간 반을 달리면 포카라에 도착한다. 우리만을 기다리고 있을 동욱과 승협을 생각하며, 부지런히 발걸음을 재촉했다.


하산길은 마음이 무척이나 홀가분했고, 고도가 높지 않기 때문에 부담 없이 속도를 내서 갈 수 있었다. 시누와에서 촘롱으로 넘어가는 길에 몇 천 개가 되는 오르막 계단을 갈 때는 솔직히 많이 힘들었지만, 이를 제외하고는 역시 하산길은 하산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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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르막을 다 오른 후, 우리는 드디어 맥주타임을 가졌다. 알고 보니 우리 가이드였던 시리는 술을 굉장히 좋아하고, 또 잘 먹는단다. 함께 산 중턱에서 맥주를 먹을 때가 가장 즐거워 보였던 건 왜일까? (물론 나도 기다려왔던 맥주를 마셔서 얼마나 신났는지 모른다.) 눈앞에 펼쳐진 엄청난 설산을 보며 애정 하는 대원들과 마시는 맥주는 행복 그 자체였다. 행복감에 못 이겨 중간에 3캔 이상을 까버리는 불상사를 저질렀지만, 대낮에 취기를 빌려 내려오는 산길도 지금 생각해보면 잊지 못할 즐거운 순간이었다. (유정의 말에 의하면 나의 스탭은 한껏 신이 오른 한 마리의 호랑나비 같았다고 한다.)


점심도 먹고, 맥주도 마실 겸 산 중턱 롯지에서 쉬고 있는데 시리와 노리쉬, 구마라이가 네팔에서만 먹을 수 있다는 말린 야크 고기를 건네주었다. 생긴 건 꼭 육포같이 생겼는데 낯선 향신료 맛도 나는 게 맥주 안주로 일품이었다. 롯지에서 만난 중국 출신 친구도 만나 이야기도 나누고 SNS도 교환하며 여행의 목적에 대해 각자의 이야기보따리도 풀었다. 다행히 우리 대원 중 한 명이 중국에서 오랜 기간 살아온 언니가 있어서 언니의 통역을 빌려 그 친구와 오랜 시간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5.PNG [출처] 유정 대원


그리고 먼저 내려간 승협과 얘기를 하다 알게 된 사실 중 하나는 거의 다 내려온 길목에 엄청난 출렁다리가 있다는 것이었다. 안나푸르나 트레킹을 하면서 가장 긴 출렁다리로 꼽히는 이 다리는 정말로 그 길이가 압도적이었다. 이렇게 긴 출렁다리는 생전 처음이었고, 어떻게 다리를 놓았는지조차 미스터리였던 크기였다. 하지만 술기운에 본 세상은 뭔들 재미없으랴. 사진도 찍고 다리 밑도 구경하고 뛰어다니기도 하며 내가 만났던 가장 아름다운 출렁다리를 온전히 즐기며 건너갔다.


그렇게 우리는 트레킹을 마친 후, 지프차에 몸을 실어 포카라로 이동했다. 낮술 덕분에 한껏 흥이 오른 나는 노리시, 구마라이와 ‘레썸삐리리’ 노래를 중창하며 즐겁게 내려올 수 있었다. 차를 타고 내려오면서 중간에 헤어졌던 라빈의 집을 지나왔다. 지나오면서 환하게 웃어주던 그의 얼굴을 보자마자 반가움과 미안함, 그리고 아쉬움에 덜컥 눈물이 났다.


포터들과 정이 많이 든 터라 갑작스러운 이별은 너무나도 당황스럽고, 아쉬워서 남은 구마라이와 노리시와 헤어질 때도 주체할 수 없이 눈물이 나왔다. 하지만 그들은 너무나도 일상인 것처럼, 여행이 끝난 후 그들만의 세계로 다시 돌아갔다. 사실 그들은 사람을 만나는 것을 업으로 하기 때문에 우리와의 이별이 그들 삶의 파이에 큰 부분을 차지하지 않을 수도 있겠다, 아니 그럴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래도 그들의 추억 한편에 우리 크로커스 대원들이 남아있길 바라는 마음을 고이 간직하고 이별을 인정하고 웃으며 기억의 저장고로 보내주었다.


6.jfif [출처] 유정 대원


한 시간 반을 달려 포카라에 도착해 동욱과 승협과 눈물의 재회를 했다. 우리는 지난번 포카라에서 묵었던 숙소와 같은 곳에서 하루를 보냈다. 저녁 메뉴를 논의하던 중 한식으로 의견이 좁혀졌고, 숙소에서 10분쯤 걸어 나가면 나오는 포카라 시내에 있는 한 한식당에서 삼겹살을 먹기로 결정했다. 마음 놓고 술을 마실 수 있는 시간이었기에 열심히 먹고 마시고 떠들었다. 2차로 포카라 메인 도로에서 창문이 다 열려 있는 2층에 위치한 바에서 한 잔 더 하고, 얼큰하게 취해 호텔에 돌아와 푹 잠들었다.


9일간의 히말라야 트레킹. 어떻게 보면 짧은 시간들이었지만 컴퓨터 그래픽을 보는 것만 같았던 웅장했던 설산 뷰와 항상 밝게 안부를 물어봐주셨던 여러 트레커분들, 무거운 짐을 이고 가느라 지치고 힘들었을 텐데도 우리를 먼저 챙겨주었던 라빈, 노리시, 구마라이, 그리고 가이드 시리. 마지막으로 청춘의 한 페이지를 함께 채워나가 준 우리 크로커스 원정대까지!


모든 것들에 대해 감사하지 않은 순간들이 없었던 9일간의 트레킹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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