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 1] 설레는 마음을 안고, 한국을 떠나다

인천공항에서 첫 번째 환승지인 쿤밍으로

by YEON


히말라야 트레킹을 준비하고 있을 당시, 나는 한 스타트업의 마케팅 인턴이었다. 면접을 봤을 때부터 트레킹을 다녀올 수 있다는 허가를 미리 받아둔 터라, 준비하는데 큰 불편함은 없었다. 팀 전체 회식을 마치고 집에 들어와 대원들과 함께 카톡을 하며 짐을 싸기 시작했다. 등산복 상 하의는 몇 벌을 가져갈 건지, 내복은 몇 개가 적당할지. 처음 싸 보는 규모의 짐이라 하나부터 열까지 감이 하나도 오지 않았지만, 여러 블로그 글들을 참고하며 그럴듯한 패킹에 성공할 수 있었다. 그리고 옷의 개수보다 더 중요한 건, 가방의 무게였다. 기내에 반입 가능한 가방의 무게는 10kg 내외였고, 우리는 최대한 그 무게에 짐을 맞춰야 했다. 체중계를 사용해 대강 무게를 맞춘 후, 트레킹용 가방 하나, 짐용 가방 하나, 총 2개의 가방을 방 한편에 놓고 침대에 누워 오지 않는 잠을 청했다.


아래는 트레킹 당시, 나의 패킹 리스트다.

베이스(상하의) 3 / 등산복(하의) 2 / 등산복(상의) 3 / 트레이닝 바지 1 / 등산양말 5 / 수면양말 2 / 방한장갑 1 / 얇은 장갑 1 / 선글라스 / 안경(+렌즈) / 비니 / 모자 / 슬리퍼 / 히트 넥 상하의 2 / 수건 2 / 방한 패딩 / 세면도구 / 화장품 / 선크림 / 일회용 렌즈 / 속옷 / 마스크 / 넥워머 2 / 귀마개 / 아이젠 / 스패츠 / 고어텍스 재킷 / 플리스 등



드디어 출국 당일의 아침이 밝았다. 크로커스 원정대가 처음 모였던 2019년 9월부터 이 순간을 얼마나 기다려왔던가! 트레킹을 위해 다 같이 기획했던 여의나루부터 서울숲까지의 라이딩, 처음 밟아본 북한산 백운대, 그리고 또 한 번의 첫 도전이었던 10km 마라톤까지. 지난 경험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눈앞에 펼쳐질 안나푸르나 봉우리들을 상상하며, 팀원들을 만나러 인천공항으로 향했다.



가장 먼저 인천공항에 도착해, 팀원들의 항공사 티켓팅 장소와 가까운 곳에 짐을 풀었다. 대원들이 하나둘씩 오는 모습을 보며 ‘우리가 정말 출국이란 걸 하는구나’하며 서서히 실감이 났다. 뭐랄까, 출국을 준비하며 우여곡절이 굉장히 많았던 것 같은데, 오로지 설렘의 감정만 남았던 순간이었다. 곧이어 성혁 원정대장, 동욱 안전부장이 합류했고, 그리고 유일한 대원인 승협 대원도 도착했다. 트레킹을 준비하며 승협 대원은 한 번도 본 적은 없었지만, SNS로 친한 척을 좀 해두었던 터라, 실제 만났을 때도 큰 어색함 없이 어울릴 수 있었다. 나는 MBTI 중 극강의 E 성향을 갖고 있었고, 승협 대원도 동일했기에 얼마 지나지 않아 기획단과 대원의 관계가 아닌, ‘원정대원’이라는 공동의 팀으로 트레킹에 임할 수 있었다.


열심히 기내 수하물을 부치고 있는 도중 대표님도 합류하셨다. 대표님은 우리와 함께 네팔로 출국하시지는 않지만, 한국에 남으셔서 발생할 수 있는 여러 이슈 사항에 24시간 대기하실 예정이셨다. 수하물을 부치고 다 같이 둘러앉아 트레킹 주의 사항에 대한 공지도 듣고, 트레킹에 임하는 마음도 나누며 체크인 시간을 기다렸다.


그런 도중 결국 이슈 사항이 발생했다. 다행히 팀 전체의 이슈는 아니고, 내 항공편의 문제였다. 중국으로 경유하는 항공편이 무기한 딜레이가 되었던 것. 비행기 예매를 하루 늦게 하면서 가격이 10만 원 정도가 올라, 그 돈을 아끼겠다고 경유 2번의 항공편을 선택했던 게 이런 꼴이 나버렸다. 사실 대표님 앞에서 아무렇지 않은 척했지만 이런 적은 처음이라 내심 정말 당황스러웠는데, 대표님께서 항공사에 전화도 먼저 해주시고, 새로운 항공편도 끊어주셔서 다행히 첫 번째 이슈는 순탄하게 마무리되었다. 하지만 나의 출발 대기 시간은 오후 10시로 변경되었고, 덕분에 오전 10시부터 무려 12시간 동안 공항에서 노숙자 신세를 져야만 했다.


12시간은 어떻게 보면 긴 시간이었지만, 여행 사전점검을 마무리하며 짧지 않은 시간을 그럭저럭 꽉 채워 흘려보냈다. J형 인간은 사전에 많은 정보를 머릿속에 입력해두고 싶다는 특이한 욕심이 있다. 쿤밍을 경유할 때 어떤 서류들을 작성해야 하고, 제출해야 되는지, 네팔에 입국했을 때 빛의 속도로 하차장을 통과하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되는지를 치밀하게 정리했다. 그렇게 만족스러운 준비를 끝내고, 스타벅스 한편에 앉아 챙겨간 어린왕자를 꺼내 들었다. 여행을 갈 때마다 꼭 책 1권을 챙겨가곤 하는데, 여행지에서 사색을 즐기며 책을 읽는 것도 물론 좋지만, 이렇게 갑작스럽게 시간이 떠버리는 경우 들고 온 책은 훌륭한 동반자가 된다.



어린왕자는 확실히 어른을 위한 동화였다. 몸집만 한 두 개의 트레킹 가방과 등산복으로 무장한 여자가 카페에 혼자 앉아 어린왕자를 읽으며 질질 짜는 모습은 내가 생각해도 너무 웃긴 장면이었지만, 성인이 된 이후 다시 읽어본 책은 내게 따듯하고도 슬픈 위안과 감동을 주었다. 혼자 밑줄도 쳐가며, 눈물도 흘리기도 하며 그렇게 천천히 책을 음미했다. 어린왕자가 의미하는 대상은 무엇이었을까, 혹시 그는 젊었을 때의 생택쥐페리가 아니었을까? 하며 나름의 결론을 내려보기도 하고, 스스로 새겨둔 꿈, 가치관에 대해서도 생각해보며 시간을 보냈다.



그렇게 혼자 생각도 끄적이고, 책도 읽다 보니 어느덧 7시 30분, 체크인 오픈 시간이 되었다. 이제 3시간만 있으면, 한국을 벗어나 첫 번째 경유지인 쿤밍으로 떠난다. 출발장으로 넘어와 유튜브를 벗 삼아 맥주 500cc 2잔을 들이켜고, 무사히 내 짐을 쿤밍에서 만날 수 있길 기도하며 동방항공 비행기에 올랐다.


모두가 잠이 든 시간, 현지시간 새벽 3시 정도에 쿤밍에 무사히 도착해 환승 통로로 발걸음을 옮겼다. 혼자 이 늦은 새벽에 공항에 도착하는 건 처음이었기에 사실 조금 긴장도 됐다. 그럴수록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도착 카드를 들고 24시간 무비자 환승 프로그램을 신청하고, 미리 찾아둔 정보에 의해 알게 된 공항 지하 3층에 위치한 환승객 들을 위한 쉼터에서 잠을 청했다. 다음 날 계획한 '무작정' 시내로 나가는 관광을 계획했기에 오전 7시에 알람을 맞춰두고, 그대로 의자에서 숙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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