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시간이 흘렀다.
돌이켜보면 꽤 길기도 하고 지나고 나니 짧게만 느껴지기도 하는 애매한 2년의 시간이었다. 그 시간 속에는 웃음도 있었고, 눈물도 있었으며, 기대와 실망, 애틋함과 허무함이 촘촘히 얽혀 있었다. 모든 감정들을 하나하나 꺼내어 정리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글을 쓰는 지금 이 순간, 나는 예전과는 조금 다른 마음으로 너를 떠올린다. 이제는 너라는 이름 앞에 아프거나 슬픈 감정보다는 그저 문득 떠오른 안부를 궁금해하는 정도의 담담함이 자리하고 있다.
이별이라는 건 언제나 예고 없이 찾아오기에 당시의 나는 아무런 준비도 되어 있지 않은 채 너의 마지막 말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이유를 묻는 나에게 끝내 명확한 답을 주지 않았던 너였고, 나는 마음속으로 수없이 많은 질문을 되뇌었다. 그 질문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내 안에 쌓여만 갔고, 어느 순간부터는 나 자신을 의심하게 만들기도 했다. 하지만 그때 나는 나만의 잘못으로 돌리지 않으려 애썼다. 모든 책임을 나에게서만 찾는 것은 온당치 않다는 걸, 그리고 어떤 관계든 두 사람 사이의 조화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로부터 4개월쯤 지났을까? 조심스럽게 주고받은 몇 번의 안부 문자 속에서 나는 네가 그동안 하지 못했던 말을 간접적으로나마 들을 수 있었다. 네가 잘 지내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묘한 안도감을 느꼈고, 우리가 헤어졌던 이유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극단적인 것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기에 그 또한 다행이라 여겼다.
우리는 그저 서로에게 중요했던 인생의 시점과 가치관이 달랐던 것뿐이었다. 그 사실을 뒤늦게라도 받아들일 수 있게 된 지금은 그 시간이 헛되지 않았다고 느껴진다.
두 사람이 사랑을 나누는 동안에도 충분한 대화가 오가지 못했다는 점은 분명 아쉬운 일이었다. 더 깊이 이야기 나누고 더 솔직하게 서로를 이해하려는 노력이 있었다면 어땠을까 싶기도 하지만, 이미 지나간 시간을 되돌릴 수는 없으니 그저 그 아쉬움을 통해 다음엔 더 나은 관계를 맺을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이제는 그 부족함조차도 배움이라 생각하며 더 이상 그 시절의 우리를 원망하지 않게 되었다.
혹시라도 길을 걷다 우연히 마주치게 되면 피하지 말고 웃으며 인사하자고. 그리고 시간이 흘러 서로의 마음이 괜찮아졌을 때 밥 한 끼 함께하자는 말이 진심인지 아니면 어색함을 감추기 위한 형식적인 말인지 알 수 없지만, 지금 돌아보면 그 한마디 덕분에 우리는 서로를 미워하지 않을 수 있었던 것 같다. 어쩌면 그 빈말이 서로에게 남길 수 있었던 마지막 배려였는지도 모른다. 그렇게라도 서로를 나쁜 기억으로만 남기지 않게 된 것이 참 다행스럽다.
사실 이 도시에 살면서 우리가 우연히 마주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로 희박하지만, 정말로 우연히 마주치는 그런 일이 생긴다면 나는 망설이지 않고 해맑게 웃으며 인사를 건넬 수 있을 것 같다. 짧은 인사에 담긴 지난 시간과 우리의 이야기는 굳이 길게 설명하지 않아도 서로의 마음으로 전해질 거라 믿는다.
이 편지를 K가 읽게 될 일은 없겠지만, 그래도 언젠가 나의 글이 너에게 닿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조용히 남겨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