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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풀사이로 Sep 21. 2021

마당이 있는 집에 산다는 것

짜장이와 희망이를 기억하며

이불 속에서 밖을 내다보니 비가 내리고 있었다. 할 일을 잔뜩 추려둔 날이라면 난감했겠지만, 게으름을 피우고 싶은 날이라 예고에 없던 비가 반가웠다. 이불 속에서 한참을 꿈틀거리다 커피 한 잔을 타 마시고 마당 순찰을 나섰다. 뒷마당에서는 길 하나 건너 할머니집이 잘 보인다. 마침 대문을 나서는 할머니가 보였다. 할머니도 나처럼 갑작스러운 비에 할 일을 잃으신 듯했다.


"할머니! 저희 집에서 점심 같이 드실래요!"


식탁에 마주 앉아 근황토크를 시작한다. 오랜만에 만나는 할머니가 반가운지 소망이는 할머니 주변을 맴돌았다. 할머니는 집에서 키우는 고양이라 그런지  깨끗하고 예쁘다며, 배가 빵빵한데 임신한 거냐고 물으셨다. 소망이는 수컷 고양이예요, 대답하고는 같이 한참을 웃었다.


할머니와의 대화 주제는 매번 다르지만 서로의 세계가 달라 그런지  흥미롭다. 특히 마을 이야기를 나눌 때면 나는 문제집의 해설지를 보는 느낌이 든다. 마을의 무언가가 바뀌었는데 도통 무엇이 바뀌었는지,  바뀌었는지 모를 때가 있다. 그럴  할머니의 이야길 들으면 아하, 하게 되곤 한다. 일주일 만에 만난 할머니는 여러 가지 마을 소식을 전해주셨다. 요즘 오소리가 나타나서 양봉하는  벌통을  먹고 주변을 엉망으로 만드는 일이 잦아졌다고 한다. 그래서 오소리를 잡으려고 덫을 놓았는데, 오소리는  잡히고 엄한 고양이가 잡혔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순간, 마음이 덜컥했다. '짜장이인가보다..'


짜장이는 올 초 어느 날부터 우리집에 나타난 턱시도 고양이다. 코에 짜장을 묻힌 것 같은 검정 무늬가 있어 짜장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작고 겁이 많아 처음에는 곁에 오지도 못하더니, 언제부턴가 우리집에 인기척이 나면 제일 먼저 달려오던 고양이였다. 텃밭 일을 할 때면 멀리서부터 '끼야앙~' 하는 특이한 목소리로 나를 부르며 달려와서, 나는 짜장이가 보이지 않아도 달려오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런 짜장이가 우리집에 오지 않은 지 몇 주가 지났다. 할머니의 이야기는 몇 주간의 추측을 확신으로 만들었다. 안 오는 게 아니라, 못 오는 거였단 생각에 마음이 울렁거렸다. 그 후로 할머니와 이야기를 더 나눴는데 내가 뭐라고 했는지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할머니가 가신 후, 손이 가는 일을 찾지 못해서 마당으로 나섰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마당 구석구석을 돌며 괜히 짜장이 이름을 불러보았다. 어디선가 고양이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 뒤돌아보면 빗소리이거나 혹은 아무것도 아니거나 했다. 나는 대문 창고에 앉아 비 내리는 마당을 한참 쳐다보고 있었다. 갑자기 마당 구석에서 무언가 꿈틀 했다. 다가가 보니, 고양이였다. 낯익은 고양이. 우리집 마당에서 밥을 먹는 너굴냥이가 초여름에 갑자기 데리고 나타난 새끼 네 마리 중 한 마리다. 간식을 놓아줄 때면 형제냥이들에게 밀려 제대로 먹지도 못하던 가장 작은 삼색냥이. 경계심 많은 제 엄마를 닮아 나를 보면 도망가느라 바빠서 이렇게 가까이서 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고양이는 물에 흠뻑 젖어 엎드려있었다. 온 힘을 내어 도망가려고 애쓰는 것 같았다. 그렇지만 고양이는 제대로 서지도 못했다. 힘을 내어 땅을 짚고 일어나도 미끄러지듯 금방 다시 고꾸라졌다. 힘이 없던 고양이는 너무 쉽게 잡혔다. 파르르 떨기도 하고 비틀거리기도 하는데, 어디를 다친 건지 들여다봐도 알 수가 없었다. 병원에 가야 할 것 같았다. 시골이라 동물병원은 한참을 나가야 하고 그나마도 주말이라 여의치 않을 것 같다는 걱정이 앞섰다. 그리고 두렵기도 했다. 내가 지금 잘하는 걸까. 내가 이 고양이를 책임질 수 있을까. 수 없이 망설이는데 짜장이 생각이 스쳐갔다. 나는 고양이를 얼른 차에 태웠다.


걱정대로 읍내 병원에서는 별 다른 처치를 받지 못하고 옆 도시 큰 병원으로 가라는 안내를 받았다. 한참을 달려서 도착한 대전의 두 번째 병원에서는 고양이가 언제 잘못돼도 이상하지 않은 상태라고 했다. 그런데도 나는 이 고양이가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담요에 폭 쌓여서 손발 하나 못쓰면서도 내가 손을 뻗으면 제 몸 만지지 말라고 하악질을 하는 이 고양이는, 분명히 살 것이다. 그런 확신이 들었다. 집에 오는 길에 아기고양이의 이름을 희망이라고 지었다. 희망이 있다는 뜻으로, 소망이 동생 희망이라는 뜻으로.


삶에 대한 내 예측이 자주 빗나갔듯이, 이번에도 그랬다. 병원에 다녀오고 1시간도 채 되지 않아 희망이는 고양이별로 떠났다. 희망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따뜻한 집에서 보내는 생애 첫날이, 마지막 날이 되었다. 눈도 채 감지 못하고 힘겹게 떠나 간 자그마한 몸을 붙잡고 한참을 울었다. 그리고 마당에 희망이를 묻어주러 나갔지만 묻지 못하고 다시 들어왔다. 혹시 다시 심장이 뛸 수도 있을 것 같아서. 정말 죽은 것이래도 따뜻한 집에서 하루는 편히 쉬어가게 해 주고 싶어서.


아침 해가 뜨고 나서, 앞마당 동백나무 아래 희망이를 묻었다. 아침 해가 반짝이고, 활짝 핀 백일홍이 참 예뻤다. 아침 바람에서는 어느새 가을이 느껴졌다. 여름에 우리집 마당을 찾아왔던 작은 고양이는 두 계절도 채 채우지 못하고 떠나갔다. 살고 죽는 것처럼 내 힘으로는 어쩔 수 없는 일들이 있다. 알면서도 이런 일들을 겪을 때마다 엄청난 무력감에 휩싸인다. 그렇지만 희망이를 보내며 생각했다. 내가 어쩔 수 없는 일이 수 없이 존재하더라도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에 더욱 마음을 쓰며 살면 좋겠다고.


희망이를 묻어주고 나는 마당을 둘러보았다. 내 마음과 달리 마당 풍경은 평화로웠다. 마당이 있는 집에 산다는 것은, 마당이란 이름의 작은 자연을 지켜보는 사람이 된다는 것이다. 앞으로도 나는 우리집 마당에 오가는 많은 생명들을 마주하게 될 것이다. 너굴냥이처럼 불현듯 우리집을 찾아오는 고양이를 만날 테고, 짜장이처럼 부끄러움이 많아 쭈뼛쭈뼛 다가오는 고양이와도 좋은 친구가 될 것이다. 그리고 아주 짧게 머물렀다 떠나는 희망이 같은 고양이를 (슬프게도) 또 만나게 될 것이다.


마당이 있는 집에 산다는 것은, 그런 일이다.




아침 일찍 출발했으니 이제 도착했겠지

편안하고 좋은 곳에 외롭지 않게 도착했길 바라


혹시 나의 서툴고 부족한 손길이

너의 시간을 더 빨리 가게 한 건 아닌지

마음 무겁게 모든 손길과 시간을 돌려보고 있단다


희망아!

잠시 내게 와서 많은 걸 알려주고 가서 고마워

니가 알려준 모든 것들을 잊지 않고 기억할게


나는 작은 마당에 드리운

자연의 순리를 이해하면서도

견디기가 어려워 오늘은 일찍 서울로 돌아왔어


그런데 서울집 창가에 서서 보는 예쁜 노을이

꼭 너의 무늬 같아서

너를 기억하며 다시 한 번 평안을 빈다


꼭 다시 만나자


2021. 8.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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