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첫 김장 이야기
2020년, 주말귀촌 첫 해의 일기 중에서
훌쩍 큰 옥수수로 가득했던 밭들이 일제히 비워졌다. 옥수수 수확이 끝난 것이다. 그 후 한 두 주가 지나자, 다시 이랑 고랑이 정갈히 만들어졌다. 이제 무얼 심으시냐는 질문에, 어르신은 김장배추를 심는다고 하셨다. 나는 그 길로 읍내에 나가 배추 모종을 사 들고 들어왔다.
모종을 사 오긴 했는데, 막상 심을 땅이 없었다. 마당 앞 뒤의 화단에는 꽃과 나무가 한창이었다. 결국 마당 한쪽, 잡초가 그득한 돌밭을 개간하기로 마음먹었다. 가만히 있어도 숨이 턱턱 막히는, 여름의 끄트머리였다. 한나절 내내 돌밭과 씨름을 하고 나자, 뭔갈 심을 수 있을 것 같은 텃밭이 생겨 났다. 배추 모종 스무 개를 줄 맞춰 심고, 무 씨를 뿌렸다. 8월 말이었다.
그 날 이후로 시골집에 도착하면 텃밭부터 확인하는 습관이 생겼다. 자그맣고 여렸던 배추 잎사귀는 매주 조금씩 커다래지고 무성해졌다. 깨알 같은 씨로 심었던 무는, 무싹이 맞나 싶은 네 잎 클로버 모양의 싹을 틔웠다. 그러더니 어느 날 갑자기 무다운 잎모양이 되었다. 쪽파는 처음 싹부터 쪽파답게 삐쭉삐쭉하더니 그대로 쑥쑥 자랐다.
배춧잎 사이의 애벌레를 잡고, 무싹을 솎아주는 사이- 늦더위가 지나고 가을비도 몇 차례 지나갔다. 찬 바람이 불기 시작하자 속까지 훤히 들여다 보이던 배추는 속이 차기 시작했다. 무는 땅 위로 뽀얀 이마를 내밀기 시작했다. 그러자 나는 김장을 해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배추, 무, 쪽파, 청갓이 마당에서 쑥쑥 자라고 있으니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드디어 수확의 날. 속이 꽉 차 단단한 배추를 양팔로 꽉 안았다. 읏챠, 하고 힘주어 당기니 순간 배추가 내 품에 와락 안겨온다. 그러자 나는 고랑에 엉덩방아를 꿍, 찧으며 널브러졌다. 무도 마찬가지다. 무청을 양손에 움켜쥐고 힘껏 당기는데 생각처럼 쉽게 뽑히질 않았다. 온몸의 무게를 실어 무를 당기니 묵직한 게 땅에서 툭, 하고 끊어져 나와 나에게 폭 안겼다. 동시에 나는 무게중심을 잃고 뒷걸음질 치다 다시 텃밭에 주저앉은 꼴이 되었다. 추위에 몸이 움츠러 들어선 지 손과 엉덩이가 무지하게 아팠다. 그래도 자꾸만 웃음이 실실 나왔다. 뽑아놓고 보니 정말 마트에서 파는 배추랑 무 같았다. 이게 정말 내가 키운 거라니. 생산자 이름에 ‘김미리’하고 박아서 출하해도 될 것 같았다. 아니, 그러기엔 너무 아까운 것 같기도 하고.
오전 내내 배추와 무를 뽑고 씻어 다듬었다. 배추는 소금에 잘 절여놓고 마당 한편에 땅을 파, 장독까지 묻었다. 땅 속 장독에서 꺼내먹는 김치에 대한 로망이 있기도 했지만, 냉장고가 너무 작아 김치를 보관할 곳이 없었기 때문이다. 무청은 한 번 데쳐 끈으로 엮은 후 처마 밑에 걸어 말렸다. 문득 할머니가 생각났다. 여느 할머니들처럼 우리 할머니도 시래기, 호박고지 같은 걸 널어 말리는 일을 자주 하셨다. 내가 입다 버린다고 내놓은 반팔티에 빨간 내복을 레이어드 해서 입고선, 해가 나는 방향을 향해 무언갈 열심히 널고 해가 지면 바삐 거두곤 하셨다. 김장을 하다보니 할머니의 동그란 어깨와 주름진 손가락이 자꾸 생각났다.
김장은 다음 날에도 이어졌다. 밤새 잘 절인 배추를 여러 번 씻어 헹군 후 양념을 발랐다. 배춧잎을 한 장 한 장 들어가며 소를 꼼꼼히 넣었다. 예전에 할머니와 엄마가 김장하던 걸 여러 번 보긴 했지만, 고춧가루 뚜껑이나 열어줬지 내가 한 일은 없었는데. 그래도 어찌어찌 갓김치도 한 통 담그고 파김치도 말아놨다. 큰 장독 두 개를 가득 채우고도 큰 김치통에 몇 개가 더 채워졌다.
그날 밤, 갓 지은 밥에 김장김치를 척, 얹어 저녁을 먹었다. 허리는 아프고 다리는 욱신거리는데- 김치는 참 맛깔나고 달았다. 나의 첫 김장이었다.
어디서 읽었는지(들었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요즘 사람들이 우울감에 빠지는 이유 중 하나가 실체가 없는 노동이라고 한다. 인류는 오래전부터 채집과 수렵을 통해서 만족감을 느꼈는데, 현대로 오면서 실체가 없는 것을 얻기 위해 살아가는 일상을 반복하기 때문이라나. 그래서일까. 작은 모종과 씨로 심었던 배추와 무가, 아주 크게 자라나 수확을 할 때. 장독 가득 김치가 되었을 때- 거짓말 조금 보태서 승진을 했을 때보다 기뻤던 것 같다. 아니다. 사실 그보다 기쁘지는 않았는데, 확실히 승진의 기쁨보다는 오래 지속되는 기쁨을 주었다. 김장김치를 다 먹을 때까지 매 끼니 기뻤으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