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주말귀촌 첫 해 일기 중에서.
겨울답지 않게 따뜻한 날씨가 계속되더니 드디어 겨울다운 바람이 분다. 조금씩 심었던 작물들은 초보의 손길에도 잘 자라주어 감사히 수확을 마쳤다. 여름 내내 끊임없이 열매를 내어주던 토마토와 고추마저 시들어버리니 와글거리던 뒷마당 텃밭이 썰렁하다. 이제 봄을 기다리는 일만 남았을까.
그런데 이웃에서 이제 겨울작물을 심는 때라고 하신다. 재빨리 읍내에 가서 양파 모종을 몇 개를 샀다. 마늘 종구는 이웃에서 조금 얻었다.
농사가 처음인데 어쩜 그렇게 때 맞춰 잘 심고 잘 수확하냐는 질문을 종종 받는다. 내 농사 비법은 '눈치농사'다. 앞집이나 옆집에서 심으면 따라 심고, 수확하면 나도 수확한다. 다양한 농사비법은 인터넷에 더 많을 테지만, 이곳에서 이 계절을 수십 번 보낸 어르신들의 경험만큼 정확하진 않을 것이다.
양파 모종과 마늘 종자는 본격적인 추위가 시작되기 전에 심는다. 그러면 겨울 노지의 칼바람을 이겨내고 다시 봄에 자라난다고 한다. 눈이 내리고 땅이 꽁꽁 어는 한겨울을 맨몸으로 버텨야 한다니, 너무한다 싶었더니 냉해를 입지 않도록 왕겨를 덮어주는 거라고 한다(그래도 너무하다).
가끔 햇양파를 먹을 때 어쩜 이렇게 매우면서도 달큰할까, 궁금했다. 아마 겨울의 매서운 추위 덕분일 것이다. 고유한 향과 깊은 맛은 긴긴 겨울을 작은 뿌리로 버티며 온 몸으로 통과했다는 증거일 것이다.
최근에 외면하고 싶은 고민거리가 생겼다. 그러다 텃밭을 가만히 바라보니, 지금은 회피가 아니라 돌파가 필요한 순간이라는 생각이 스친다. 겨울의 매서운 바람을 통과해야 단단한 나로 열매 맺는 계절을 기대할 수 있다.
양파에게도, 나에게도 겨울나기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