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 자정에 가까운 시간. 나는 시골집 문 앞에 도착한다. 주말마다 이 자리를 떠나고 또 돌아오기를 반복하다 보니, 매주 이 순간이 늘 반갑고 설렌다. 얼른 차에서 내려 살피고픈 것들이 많지만 그래도 느릿느릿 주차를 한다. 밤눈이 어두운 편이기도 하고, 시골의 밤은 정말 까아-맣기 때문이다. 빌딩과 간판의 불빛이 없는 오롯한 밤은 이렇게나 캄캄한 거였다. 주차를 하느라 핸들을 이리저리 꺾으니 헤드라이트 불빛이 앞집과 옆집 텃밭에 와락 쏟아진다. 깊은 밤, 곤히 자던 텃밭을 깨운 기분이다. 누군가 잠든 침실에 예고 없이 불을 켠 것 마냥. 미안하고 민망한 마음으로 핸들을 제 자리로 돌리며 조심스럽게 후진을 한다. 그런데 뭔가 평소 같지 않은 느낌이다. 이쯤에서 한 번 ‘덜컹’ 해야 하는데. 예상과 달리 매끄럽게 지나 가진다. 이상하다.
우리집 대문 앞 주차공간과 마을길 사이에는 야트막한 턱이 있다. 마을길은 아스팔트로 포장되어 있는데 그 길과 접한 집 앞 공간은 흙으로 되어있다 보니 단차가 생기는 것이다. 그래서 항상 차가 들고날 때 '쿵' 하는 소리가 나곤 했다. 다음 날 살펴보니, 차바퀴가 매끄럽게 지나갈 수 있도록 움푹 파인 곳이 단단히 메워져 있었다. 누군가의 손길이 다녀간 모양이다. 누굴까. 어떤 이의 다정함일까.
모든 사람이 다정파와 안다정파 중 꼭 하나의 그룹에 속해야 한다면, 확실히 나는 안다정파에 속하게 될 것이다. 감정이란 모두 상대적이지만 다정만큼 애매한 감정이 또 있을까. 만약 이 분류작업을 모든 사람에게 해야 한다면 꽤 고달픈 작업이 될 것 같다. 그럼에도 이 사람은 확실히 다정파야, 싶은 사람들이 떠오른다. 내가 다정파로 분류해놓은 이들은 하나같이 어떤 장면이나 순간으로 기억되어 있지 않았다. 그 사람에게서 온 말, 글, 행동들의 자연스러운 흐름으로 내 마음에 남아 있었다. 잔잔히 퍼져나가는 물결처럼.
내가 생각하는 다정이란, 꼭 그러지 않아도 되지만 그렇게 해주는 것. 대가를 바라지 않고 기꺼이 베푸는 것이다. 그런데 나는 꼭 해내야 하는 일조차 버겁고, 대가를 바라고 하는 일도 겨우 해낸다. 그러니까 다정의 영역까지는 애쓰지 않기로 한 것이다. 그러기에 내 마음이 바쁘다는 핑계를 대는 것이다.
그런데 이 조용한 시골 마을이 자꾸 나를 들여다본다. 부족한 것이 있으면 채워주고, 서툰 것이 있으면 하나씩 일러준다. 따뜻하지만 뜨겁지는 않다. 적당한 거리에서 거친 손이 내 어깨를 툭툭 두드리듯 투박한 다정이었다.
잠결에 경운기 소리가 들린다. 창 밖을 내다보니 아직 해도 뜨지 않은 새벽 어스름이다. 앞집 어르신이 벌써 밭일에 나서시는 모양이다. 아마 지금부터 해 질 녘까지 바삐 일하실 것이다. 수백 평의 땅에 휴일 없이 농사를 짓고, 가족을 돌본다(그리고 어느 날 이 마을에 굴러 들어온 이방인까지 잊지 않고 챙기신다).
자기 몫의 하루가 버겁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늘 마음이 여유로워 다른 이를 도닥이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나도 자꾸만 안으로, 안으로만 향하는 시선을 밖으로 옮겨보기로 한다. 내가 아닌 누군가에게, 무언가에게.
나의 서툰 다정도 누군가에게 잔잔히 닿기를 바라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