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이 된 후로 오랫동안, 높은 빈도로 저를 행복하게 해 준 것이 있습니다. 바로 편의점 4캔 만원 맥주입니다(이제는 1.1만 원).
독립을 하고, 취업을 하고, 10여 년이 넘는 회사생활을 하는, 그 오랜 세월 중 많은 날들을 함께했어요. 야근하는 날은 야근을 해서, 일찍 퇴근하는 날은 퇴근을 해서, 혼자인 날은 혼자라서, 누군가와 함께인 날은 함께라서- 편의점 맥주 냉장고 앞에 섰습니다.
세계 각 지역의, 여러 향과 맛을 지닌 맥주가 4캔에 만원이라니! 그것도 여러 종류를 교차해서 선택할 수도 있다니! 처음에는 4캔을 고르는데 한참의 시간이 걸렸습니다. 이제는 자동반사처럼 정해진 맥주를 집고는 계산대로 향하지만요.
퇴맥. 그러니까 퇴근맥주는 제게 보상이었어요. 오늘 하루도 고생한 나에게 주는 시원한 한 잔. 거품 그득한 그 한 잔이 지친 몸과 마음에 위로를 줬거든요. 좋아하는 음식이나 재밌는 책, 정주행 할 영상까지 함께라면 더 부러울 게 없죠.
퇴사 후 일상에서 퇴근이 사라진 지금도, 퇴맥은 여전합니다. 퇴근맥주에서 퇴근은 사라졌는데, 맥주는 여전히 남아있습니다.
뽈록 나온 배와 둔둔한 허벅지, 유난히 느려진 몸도 남았지요. 높아진 염증 수치와 심해진 알러지 증상들도 제가 4캔 맥주와 오래도록 사랑한 흔적인 것 같습니다.
덕분에 버티고 견딘 나날이 많아 고마운 마음*이지만, 이제는 조금 거리를 두려고 해요. 어느새 습관이 되어버린 것 같은 퇴맥과 말이죠. 다음 주는 좀 더 가뿐한 몸으로 주간보고를 쓰고 싶습니다.
구글링을 통해, 편의점 4캔 만원 맥주의 시작은 2015년이라는 정보를 찾았습니다(출처 : 경향신문). 제가 소셜커머스를 다니던 시절이군요. 새벽공기 마시며 출근하고, 새벽별 보며 퇴근했는데... 4캔 맥주를 마실 시간이 있었다니 젊음이란 참으로 대단합니다. (라떼족임을 부정하지 않겠습니다, 엣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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