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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풀사이로 Mar 07. 2023

기다림이 맺히는 일


지난주부터 온 마을이 고향의 냄새로 가득합니다. 고향의 냄새가 뭔 줄 아시죠? 시골 마을에서 나는 구수한 냄새입니다. 본격적인 봄 농사를 시작하기 전에 퇴비를 주는 시즌이 있는데요, 요즘이 딱 그 시기입니다. 이 즈음 수풀집에 놀러 왔던 친구는, 혹시 주변에 축사나 푸세식 화장실이 있느냐고 묻기도 했어요. 그만큼 강력한 냄새긴 해요.


저 역시 처음에는 코를 틀어막고 "이게 대체 무슨 냄새야?" 하며 가자미눈을 했는데요. 이제는 "드디어 봄 농사를 시작할 때가 되었구나" 하는 신호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덕분에 수풀집 텃밭도 봄맞이를 했습니다. 깊이갈이를 하고 퇴비를 뿌린 후, 이랑고랑을 두두룩이 만들어 두었어요. 다음 주에 씨감자를 심으며 봄 농사를 시작할 생각이었습니다. 소란한 저희 집 마당을 건너다보시던 이웃 어르신이 완두콩을 한 주먹 쥐어주고 가시기 전까지는요.


계획에도 없던 완두콩이 올해 수풀집 텃밭의 첫 작물이 되었습니다. 농사가 늘 이런 식으로 계획을 벗어나기 때문에, (MBTI 마지막 선호지표가 파워 J임에도) 농사계획이 매우 듬성듬성한 편입니다.


다음 주 수풀집에 도착했을 때, 완두콩의 싹이 나 있을지 벌써부터 궁금해집니다. 아직은 저어기 멀리에 있을 푸르고 동그란 잎, 무엇이든 감고 올라가는 덩굴손, 뽀얗고 소박한 꽃, 통통한 꼬투리, 동글동글한 열매까지도요.


어르신이 일러 주신 대로 이랑 위에 손가락으로 작은 홈을 내어 쪼글쪼글한 완두콩을 두어 개 넣고, 포슬포슬 흙을 덮었습니다. 이 작고 쪼글쪼글한 동그라미가 수십 수백 개의 완두콩이 되어 맺힐 수 있을까요? 기다려보려고요. 농사는 기다림이 전부인 일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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