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직 후 한 달, 다시 퇴사하며
여느 해보다 일찍 벚꽃이 피고 졌습니다. 예년과 다른 날씨에 꽃이 피고 지는 순서도 뒤죽박죽이었고요. 지난 한 달, 제 마음도 마치 계절 같았습니다.
지난 2월 초, 퇴사한다는 소식을 전했었지요. 잠시 멈추고 사소하지만 때때로 위대해지는 호기심들에 마음을 쓰며 지내겠다면서요. 그후 저는 자유롭고 충만한 마음으로 한 달 간의 갭모먼트 보냈고, 곧 새 회사를 정해 출근을 했습니다. 그렇게 3월 7일에 새 회사로 첫 출근을 했던 저는, 지난 금요일인 4월 7일에 다시 마지막 출근을 하게 되었습니다.
네, 퇴사했어요. 다시 퇴사원이 되어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맞은 첫 주말의 산책길. 하루가 시작되는 게 기쁘고, 날이 저무는 게 아쉽더라고요. 아주 오랜만에 든 생각입니다. 그저 오늘 하루 버틴다는 마음이, 드디어 저를 떠난 것 같아 기뻤어요. 하얀 꽃을 피운 귀룽나무가 우아하게 흔들리는 모습을 바라보며, 지금 이 순간 나에게는 이 결정이 맞다는 확신을 했습니다.
보통의 봄꽃들이 꽃을 먼저 피우고 잎을 내지요, 벚꽃이나 개나리꽃처럼요. 사진 속 귀룽나무는 푸른 잎을 먼저 낸 후 나중에 꽃을 피웁니다. 각기 다른 방식으로 피어나는 꽃처럼, 저도 조금 다른 방식으로 살아보려 합니다.
퇴사를 결정하고 한동안 자책했습니다. '이럴거면 처음 퇴사했을 때 다시 회사로 돌아가지 말았어야지.' 하면서요. 그러다 이런 생각을 했어요. 만약 이 일이 없었더라면 어땠을까. 불안할 때마다 '다시 회사로 돌아가야 하는 게 아닐까' 고민을 거듭했을 거예요. 저는 이 잠깐의 시간을, 잘못된 선택이나 실수가 아닌 '경험'이라고 이름 붙여 소중히 간직하기로 했습니다.
과거의 저였다면 어떤 식으로든 상황에 자신을 끼워 맞추며 소리 없이 견뎠을 거예요. 그러면서 자신을 혹사했겠죠. 더 늦지 않게 몸과 마음이 보낸 신호를 알아채고 결정한 저를, 예전보다 훌쩍 성장한 저를, 장하게 여기기로 했습니다. 앞으로 저는 주 7일 중 5일. 실은 그 이상을 회사에 할애하는 삶을 그만두기로 결정했습니다. 언제까지 유효할지는 모르겠지만, 당분간 그렇게 살아보려 해요.
결정이 쉽지는 않았습니다. 여러 이유가 저를 주저 앉혔지만, 매번 저를 꿇린 것은 경제적인 문제, 바로 '돈'이었어요. 스스로 생계를 유지하는 일은 세상 어떤 일보다 중한 일이니까요. 안정적인 직장을 그만둔다는 것은, 지난 13년 간 매달 통장에 들어오던 월급이 사라진다는 뜻이지요. 무서웠어요. 세상에는 돈보다 중요한 게 아주 많은데, 필요할 때 필요한 만큼 돈이 없으면 진짜 중요한 것보다 돈 생각을 더 많이, 더 자주 하게 된다는 걸- 알고 있으니까요. 그게 너무나 두려웠고, 사실 지금도 두렵습니다.
두려움 속에서 제게 물었어요. '지금 당장 수백 억이 생겨도, 출근할거야?' 회사생활을 시작한 뒤, 힘들고 벅찰 때마다 스스로 했던 질문입니다. 답이 망설여지는 날도 있었지만, 줄곧 예스였어요. 출근의 이유가 꼭 월급만은 아니었거든요. 일로 얻는 성취. 그것이 매일 아침 저를 일으켰습니다. 이번에도 답은 예스였습니다. 일하고 싶어요. 수백 억이 생긴다 해도 여전히 하고 싶은 일이, 마음에 있습니다. 그런데 그 일들이 회사 안에 있지는 않더라고요. 그래서 용기를 냈습니다.
선한 브랜드들이 꾸준히 성장하도록 돕는 일. 글을 쓰고 콘텐츠를 만드는 일. 일단 해내야 하는 일이 아니라 정말 하고 싶은 일. 그런 일들을 하며 스스로를 고용하는 삶, 24시간을 회사와 나누지 않고 온전히 소유하는 삶을 시도해보려 합니다.
이렇게도 살아지는지, 제가 한 번 실험해볼게요. 삶을 실험하는 작은 실험실을 꾸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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