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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풀사이로 Apr 25. 2023

퇴사 후 나를 슬프게 하는 것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회사라는 조직을 떠나 2주를 보냈고, 3번째 퇴사원 주간보고를 보냅니다. 누적으로는 7번째 주간보고네요. 그간의 주간보고엔 '퇴사 후 여백이 많아진 일상'과 '프리 에이전트로서 제가 기대하는 미래'처럼 긍정적인 면에 대해서 주로 쓴 것 같은데요. 오늘은 퇴사 후 일상의 또 다른 단면에 대해 이야기하려 해요. 퇴사 후 나를 슬프게 하는 것들입니다.






1. 회사가 보증하던 경제적 신용이 사라졌습니다.


신용대출, 신용카드 발급이 까다로워졌습니다. 여기서의 신용은 부채를 얼마나 안정적으로 상환할 수 있는지인데요. 월급, 그러니까 안정적 소득이 없는 자에게 돈을 빌려주기란 쉽지 않겠죠. 제 경우, 기존에 사용하던 신용카드가 있었기 때문에, 마이너스 통장만 퇴사 직전 재개설*을 했습니다.


하지만 갱신을 해야 하는 1년 후엔 어떨지 모르겠네요. 아마 한도는 줄고, 금리는 오르겠지요. 곧 건강보험과 국민연금 고지서도 도착할 거예요. 회사와 나누어 부담하던 비용들이 오롯이 제 몫이 되겠지요. 물론 소득이 줄었으니 전체 비용도 줄기는 하겠지만요.


*대출한도와 기간을 최대로 쓰기 위해서 갱신이나 한도상향을 하지 않고 해지 후 재개설을 했습니다. 덕분에 금리는 이전보다 올랐습니다.



2. 사회적 신용도 희미해졌습니다.


경제적 신용까지는 예측했던 상황이라 새롭지는 않았어요. 그런데 며칠 전, 직무 관련 세미나를 신청할 때 '아...' 하는 탄식의 순간이 있었어요. 소속과 직책을 입력해야 하는 칸이 있었던 것인데요. 공란으로 두고 넘어가려 했더니, "필수입력 항목을 확인해 주세요"라는 경고가 뜨더라고요.


고민하다 프리랜서라고 입력한 후 신청하기는 했는데, 순간 접수가 안될까 봐 걱정이 되더라고요. 회사원일 때는 한 번도 경험하지 못했던 일이라, 그 잠깐 사이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앞으로 이런 순간이 수없이 많을 테지요. 긴 말 없이 나를 대변하곤 했던 소속의 부재를 느끼는 일이요. 



3. 작은 지출 앞에서도 자주 망설이게 됩니다.


얼마 전 동네 산책을 나섰다 한기를 느꼈어요. 낮에는 초여름처럼 덥지만, 아침저녁으로는 쌀쌀하잖아요. '이러다 감기 들면 큰일이지'하며 동네 카페로 향했습니다. 따뜻한 차 한 잔 마시며 걸으려고요. 근데 결국 발걸음을 돌렸습니다. 순간 찻값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속이 쓰렸어요. 퇴사 후 독립하면 듬직하던 월급은 사라지고, 단숨에 월급만큼 벌지는 못할 테니- 아껴 써야 하고 빠듯할 것이다,라고 예상은 했지만요. 일상의 사소한 순간까지 이런 생각이 스미니 생각이 많아지더라고요. 



4. 새로운 메일과 동료를 한없이 기다립니다.


회사원이던 때에는 메일을 기다린 적이 있었나 싶어요. 새로운 메일 = 새로운 업무니까요. 오히려 싫어했던 것 같아요. 그런데 프리 에이전트가 된 지금은, 메일함을 자주 새로고침합니다. 혹시 새로운 일감이 도착하지 않았나 싶어서요. 물론 새로운 메일이 도착하는 날보다 'No New Messages'란 문구가 맞아주는 때가 더 많습니다. (그러다 독자님들의 답장을 받으면 보너스를 받은 것처럼 기쁩니다.)


늘 연결되어 있던 유능한 동료들이 이제는 디폴트가 아니라는 것도 저를 슬프게 하는 사실 중 하나입니다. 프리 에이전트는 프로젝트에 따라 동료들이 자주 바뀌기도 하고, 높은 빈도로 혼자 일하니까요. 



5. 선택과 고민은 생계에 관한 것입니다.


주도적으로 일하며 결과에 책임지는 것. 제가 가장 좋아하는 일의 방식입니다. 그러나 회사 안에서는 그 주도성, 책임감이 한정적이었다는 것을 느끼고 있습니다. 돌아보니 회사 안에서는 성공에도, 실패에도- 늘 완충지대가 있었네요.


이 일을 할지 말지, 어떤 일에 우선순위를 둘지, 어떤 조건을 다시 조정해야 할지- 모든 것이 제 선택에 달려 있습니다. 현재 제 능력치, 커리어, 일의 재미, 페이, 기한 모두를 고려해서 여러 개의 프로젝트를 저글링 하듯 운영하는 것. 어렵기도 어렵고, 생계가 걸린 일이니 무척 조심스럽습니다.






그간 퇴사 후 일상에 대해 너무 핑크빛으로 이야기한 것 같아, 또 다른 면도 꺼내어 이야기해 봅니다. 모든 일에는 여러 면이 있으니까요.


종종 퇴사 고민을 한다는 구독자님들의 편지를 받습니다. 모두의 상황이 다르고 결정은 스스로의 몫이니, 퇴사일기를 쓰며 사실과 감정을 구분해 보시란 이야길 했었는데요. 어쩌면 이 글은 그 편지들에 대한 답장일지도 모르겠어요. 퇴사 후 일상에서 위에 열거한 슬픔을 상쇄할 만한 기쁨과 행복을 찾을 수 있어야겠지요. 그렇담 그게 맞는 선택이 아닐까 싶습니다.


저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삶을 선택했어요. 손에 움켜쥔 것을 놓아야 새로운 것을 집을 수 있다고 믿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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