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어나보니 쓰레기통 4

by Noah

박찬호가 메이저리그에서 활약할 때였다. 재미없던 학교를 끝마치고 터벅터벅 신발 주머니를 발로 차며 집에 들어와보니 공주, 철없는 공주, 엄마의 얼굴에는 근심이 가득하다. 티를 안 낸다고 안 내려는 모양인데, 저런, 아들은 지금 HSP(Highly Sensitive Person)지만 어려서도 그랬다. 해가 중천을 넘었는데 대리운전을 하러 간 아빠는 집에 없었다. 엄마는 나를 보고 웃었지만 이내 꼭 죽은 사람 같은 표정을 지었다.


부인상을 치뤘나 술에 찌든 아빠가 들어왔다. 괴물 같았다. 노란 패딩 안에서 초록색 라이터와 담배를 꺼내놓고 아빠는 그대로 소파에 엎어졌다. 라이터에는 단란주점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이내 내가 학교를 끝내고 놀고 왔던 어느 문방구가 떠올랐다.


'아, 바로 집으로 올 걸.'


엄마는 말없이 아빠의 양말을 벗겼다. 집안은 조용한데 TV는 시끄러웠다. 박찬호. 그때부터였을지도 모른다. 남자치고 스포츠를 잘 좋아하지 않는 나다. 나는 항상 말했다. '야, 김연아가 1등하면 쌀 한 톨 떨어지냐?' 아마도 그때부터였을 것이다. 스포츠를 보고 응원하는 건 정말 한심한 행동 중 하나라는 것. 주변을 둘러보면 자신이 스포츠 먼저 신경써야할 것들이 넘쳐나니까. 모르겠다. 나에게도 여유라는 것이 생기면, 그래서 삶과 TV속 스포츠 환호성의 괴리감이 느껴지지 않으면 어느 종목을 좋아하게 될지도.


박찬호와 우리 아빠는 이름에서 한 글자만 차이 난다. 재미있지 아니한가, 그 대비감. 대비, 비교, 남과 다른 나, 꽤 어린 시절 이미 깨달았던 것 같다. 환호와 정적, 빛과 어둠, 밖과 안, 취기와 치기, 아빠와 엄마, 엄마와 아빠. 아빠와 엄마의 대비로 인한 반쪽짜리 나.


거기가 쓰레기통이었다. 똥파리 부모, 구더기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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