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엄마 아빠가 결혼하고 1년 뒤 태어났다. 내가 태어나기 전 엄마 아빠의 사진을 보면 뭐 좋다고 서로 웃고는 있더라. 그래서 아, 뭐 아빠가 쫓아다닌 것만이 결혼의 이유가 아니었겠거니 뭐 엄마도 항문을 확인하는 새 보다는 못하지만 뭘 보고 좋아하긴 좋아했는 모양이다 생각해왔다.
모두가 그렇겠지만 '나'의 어린 시절 사진을 보면 가슴이 벅차오른다. 사랑, 생명, 숨소리. 여러 단어가 떠오를 것이다. 그리고 이 모든 단어를 연결지을 수 있는 또 다른 단어는 '책임감'이다. 하다못해 무언가를 창조해내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은 거기에 생명과 숨소리가 깃들지 않았어도 자신의 작품에 책임감을 갖게 된다. 나의 작품. 대학시절 과제물을 낼 때 매번 두통이 왔다. 어쩌면 이 글도 나의 작품이기 때문이다. 교수라는 세상의 잣대로 평가받는 작품.
나는 시대의 잣대로 어떤 평가를 받고 살고 있을까. 분명한 건, 또래에 비해 이뤄놓은 게 하나도 없는 점수를 B정도 줄 수 있는 작품일 것 같다. 나를 빚어낸 사람들은 나에 대한 책임감이 부족했다. 나도 없다고는 말하지 않겠다. 이렇게 글자를 끄적이고 있지 아니한가. 영광이다.
나는 나의 어린 시절 사진을 보면 한 마디가 더 떠오른다. 불쌍한 애기, 불쌍하다.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난 것도 아닌 불쌍한 애기. 마치 구더기를 보는 듯하다. 자라나면 똥파리가 될 구더기. 왜 태어났니?
아빠 집안에서는 장손, 엄마 집안에서는 30년만에 태어난 아기. 두 타이틀로 사랑 받고 자랐다. 사랑 받을 때는 행복해서 그런 건가, 너무 어린 시절 이야기라 그런가 그 사랑의 기억은 잘 나지 않는다. 나의 기억이 시작되는 곳은 초등학생 무렵 살던 아파트, 그 집의 냄새, 그 집의 분위기. 이제 정말 시작되었다. 원래 쓰레기통도 처음에 쓰레기를 버릴 땐 그렇게 심하게 냄새가 나지 않는다. 시간이 지날수록 악취가 나는 것.
우리 집안에도 악취가 나기 시작했다. 가느다랗고 얕은 사랑이 어떻게 가정이라는 단단함을 만들겠나. 어림도 없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