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돈을 두고 간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뭐 시켜먹으라는 쪽지와 함께. '미강빌라, B02호요. 아니 광이 아니라 강물할 때 강이요. 지층2호요. 지... 지하... 1층 2호요.'
요즘 이혼을 보면 양육권을 주장하는 자에게 보조 양육자가 있는지 물어보더라. 왜 그럴까? 나는 엄마와 살게 되었지만 그때부터 엄마의 빈자리도 함께 느끼며 살아왔다. 아빠가 양육비를 얼마를 어떻게 몇 번 줬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러나 어쨌든 엄마는 아들과 살아가야만 했다. 경단녀로 나가서 돈을 벌어야했다. 아빠가 해야했던, 심지어 그때 맞벌이 부부가 이슈가 되기 시작했던 빠듯했던 그때, 우리는 엄마 혼자 나가 돈을 번 것이다.
할머니가 집에 자주 머무르시긴 했지만, 나도 가사를 배우기 시작해야했다. 미강빌라, 지층 2호 모든 게 낯선 그곳에서부터 가사를 조금씩 배워야 했다. 배움도 낯설음인 것을 우리 모두가 알 것이다. 나의 모든 것은 온통 흔들리기 시작했다.
빌라촌에 노란 가로등 불빛들, 밤이 되면 무서운 거리, 방 창문 밖으로 보이는 누군지 모르는 사람들의 발, 담배와 꽁초, 가래침. 습하고 빛이 안 들어오는 곳. 통기가 되지 않아 과습으로 썩어들어갈 화분 속 화초의 뿌리처럼, 나는 금방이라도 썩어들어갈 것 같았다.
사춘기가 없이 자라왔다고 생각했다. 지나고 보니 그때가 사춘기였다. 나를 포함한 주변 모든 사람들이 잘 몰랐을 뿐. 많이 흔들렸다. 소심한 나는 새로운 학교에 적응하지도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초등학교 6학년 막바지에 전학을 갔으니 곧 있음 졸업이고, 그 뒤에는 중학교에 진학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뭘 쌓을 수 없었다. 내 친구들은 여기에 살지 않고, 내가 다니던 신도시 학교와는 너무나도 다른 더럽고 구렸던 2층짜리 초등학교. 몸은 아파왔다. 원래 앓고 있던 천식은 심해져갔고, 스트레스성 비듬, 때도 잘 알고 찾아오는 맹장. 나는 그렇게 모든 게 어둡고 습한 지하로 떨어져 내려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