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부터 였다. 흘러가는 유수에 몸을 맡긴 채 허공을 바라보고 있던 어린 나. 벽도 없었고, 틀도 없었다. 그저 어른들이 이끄는 방향에 나를 실었다.
외식을 하고 며칠이 지났나. 아빠는 자신의 짐들을 챙겨 집을 나갔다. 마지막 짐을 챙겨 나갈 때 나를 꼭 안아주었다. 그리고 유분기 있는 자신의 볼을 나의 볼에 부비며 말했다. 일이 바빠져 작업실을 얻어 잠깐 떨어져있는 거라고. 영영 헤어지는 것이 아니라고. 보고 싶을 때 볼 수 있다고.
틀이 사라지자마자 나는 한참을 허우적대며 숨도 제대로 못 쉬고 물을 먹었다. 아빠가 집에서 사라지고 난 뒤에는 아빠가 죽은 것도 아닌데 그렇게나 허우적댔다. 아빠가 없이 외식을 하는 것도 싫었다. 내가 태어나서 지금까지 배운 가정은 그런 형태가 아니지 않나. 아빠가 돌아가셨던 거라면, 그리고 또 그런 가정이면 당연히 아빠가 없는 외식은 자연스러웠을 것이다. 하다못해 아빠가 잠깐 어디론가 출장을 갔던 거라면 아무렇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나의 아빠는 프리랜서였지 않나. 그렇게 한참을 밖에 나가는 나의 모습이 자연스럽지 않았던 것 같다. 외식 거부도 몇 개월을 이어갔다.
그때는 양육권, 면접교섭권 뭐든 제대로 법적으로 존재했는지 모르겠다. 어려서 내가 몰랐던 건지. 어쨌든 엄마는 아빠를 자주 만나게 해주었다. 아빠의 직업은 바뀌어 있었다. 현대자동차 영업사원. 웃겼다. 정장의 아빠도 처음 봤고, 영업을 하는 아빠도 더욱이 처음이었다. 일러스트레이터, 프리랜서 시절에나 출판사들에 그렇게 영업을 좀 잘 해보지. 만나면 메뉴는 항상 롯데리아 햄버거였다. 나는 햄버거가 그때부터 좋았다. 그리고 아빠와 보내는 그 시간이 너무 소중했다. 아빠의 몸속으로 들어가서 살고 싶을 정도로 소중하고 좋았다. 어린 나의 눈에는 아버지가 가장 든든했기 때문에, 나에게도, 그리고 철없는 공주 엄마에게도 필요한 사람 같았다. 그리고 아빠와 만나면 가끔 가게 되는 피씨방, 목욕탕. 좋았다.
기분 좋게 집에 돌아오면 한동안 우리 집에 계시던 할머니는 꼭 묻는 질문이 하나 있었다. 아빠랑 뭘 먹었냐는 것. 나는 밝은 표정으로 햄버거! 대답했다. 할머니는 매번 식은 감자튀김처럼 말했다. '기껏 햄버거, 그깟 햄버거가 맛있어? 아니, 아빠가 만나서 햄버거나 사줬어?'
햄버거, 내가 제일 좋아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