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태롭고 엉망진창이었다. 사네, 마네. 내가 애들을 데리고 살 것이다, 아니다 넌 안 된다, 내가 데리고 살 것이다. 뭐가 어떻게 되어가는 건지, 앞으로 가정은 어떻게 되는 건지 아무것도 몰랐다. 나는 그저 아직도 초등학생이다.
친가의 제사, 그리고 명절 때면 엄마가 같이 안 가기 시작했다. 가면 친가의 분위기는 그렇게 썩 좋지도 않았다. 한 번은 할머니가 설거지를 하다 말고 싱크대에 그릇을 내던졌다. 그리고 할머니는 눈물을 흘리며 같이 있지도 않은 엄마를 향해 욕을 했다. '시발년, 지랄'이라고. 할아버지는 놀라서 안방으로 빠르게 들어가 외투를 꺼내 나오면서 안주머니에 있던 돈을 손에 쥐어줬다. 아빠랑 피씨방에 다녀오라며. 너무 충격이 컸다. 지금 생각해도 그때 무슨 감정이었는지 기억이 안 난다. 슬프지도 화가 나지도 않았다. 당황이라고 하기엔 그 단어에 나의 마음을 담지 못한다. 글을 쓰는 지금도 손이 떨린다.
어른들은 하나 같이 그 모양이었다. 현명하지 못했고 자신들도 삶이 처음이라는 이유로 상처를 주기 시작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할머니가 조금은 이해갈 것 같다. 아무래도 며느리 보다 자기 자식을 데리고 명절에 혼자 집에 온 아들이 안 됐을 것이다. 손자는 보이지 않았던 것인지 순간적인 재채기와 같은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나는 들어버렸다. 그리고 그것을 이렇게 남길 정도로 박혀버렸다. 그러면 안 되는 것이었다.
아빠와 엄마는 깊은 대화를 섞지 않기 시작했고, 나를 붙잡고 본인들의 신세한탄만 해댔다. 다 그 모양이었다. 초등학생인 나에게. 경제력이 없다는 이야기, 만약 엄마 아빠가 떨어져 살면 너는 누구와 살겠냐는 질문, 때때로는 어린 자식 앞에서 보이는 눈물들. 아프지는 않았다. 그렇게 자식에게 사랑을 이야기하던 부모였으니 내가 죽을 환경에 놓이진 않겠지. 그냥 벽을 마주한 듯한 답답함뿐이었다. 여기는 어디, 나는 누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