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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설향 Feb 12. 2024

나의 스승 S

감정적 한계 설정

직장 동료 S가 유독 예민해진 것은 작년 연말쯤인 것 같다. 

초보아빠 S에게는 현재 9개월 된 아기가 있다. 태어나고 한동안은 밤에 자는 시간도 길고 분유도 잘 먹어 주변에서 효녀라는 소리를 들었다. 그런 아기가 이유식을 시작하면서 장염을 일주일 동안 앓았다. 밤낮으로 설사를 하는 탓에 S도 덩달아 잠을 설쳤다고 했다. 아기는 아팠고 본인도 잠이 부족했고 그로 인한 S의 스트레스는 큰 듯했다. 덩달아 지각하는 날이 잦았고 일을 하면서도 예민함과 무거움을 늘 가지고 있었다.      


아기의 장염이 지나가고 2주 뒤, S는 갑작스럽게 당일 휴가를 냈다. 국장님께서는 주어가 없이 열이 나서 휴가를 냈다고만 하셨다. 그렇기에 직원들은 S가 열이 나서 출근을 하지 못한 걸로 이해를 했다. 뒤늦게 듣기론 주어가 S가 아니라 S의 아기였다. 다음 날 S는 정상 출근을 했고, 관리사님(연세가 아버지뻘이다.)은 S에게 안부를 물어보았다.      


“열이 났었다며? 괜찮아?”     


아기가 열이 났다는 것을 미처 듣지 못한 관리사님은 S의 안부를 물어보았다. S는 조금 퉁명스러운 말투로,     

“제가 아픈 게 아니고 애가 열이 났어요. 괜찮아요.”     


S의 대답에 관리사님은 말씀을 더 하지 않으시고 자리에 앉으셨다. S는 사람들의 질문이 귀찮았던 걸까, 아기를 걱정하며 괜찮냐고 건넨 국장님이 질문에도 S는 쳐다보지도 않고 괜찮다고 짧은 대답만을 했다. 국장님은 조금 멋쩍어했고 옆에 있는 나까지 민망해질 뻔했다. 나는 S의 태도가 이해되지 않았다. 직원들이 S에게 잘못을 한 거 마냥 어른들을 대하는 S의 태도가 불편하기까지 했다. 13년을 알고 지냈고 그중 7년을 직장 동료로 봐온 S가 내가 생각한 것보다 더 별로인 사람이라는 작은 확증이 들기 시작했다.       


S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은 이번 한 번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상대에 대한 부정적인 경험이 쌓이면서 그런가, 아닌가 하던 것이 확신이 된 것이다. 7년 간 S를 직장 동료로 봐오면서 사람들을 태하는 태도, 일에 대한 자세, 휴가를 사용하는 것 등 사소한 것들이 누적이 되어 결국엔 확신이 되었다.      


S는 가끔 스스로에 대해 저평가된 이야기를 할 때 있었다. 사람들이 본인을 가까이에서 보면 실망을 한다든지, 기억력이 좋지 않다든지 등의 이야기였다. 지금의 직장에 오래 있을 생각이 없고 이직을 할 거라는 얘기를 몇 년 동안 계속해오고 있다. 박봉인 이곳을 떠나고 싶은 마음은 있으나 그것을 행동으로 옮기기 위한 노력이나 의지는 없어 보였다. S가 스스로에 대한 부정적인 말이나 행동이 그렇게 쌓여갔고 그것은 이상한 형태의 가스라이팅이 되어 S를 향한 신뢰가 자라지 못하게 되었다.      


처음엔 S의 예민함과 널뛰는 감정을 이해해 보고 싶었다. 정시에 오는 날 보다 지각하는 날이 많은 것도 이해해 보고 싶었다. 왜냐면 친했던 S의 관계를 불편하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 여전히 S와 잘 지내고 싶고 조잘조잘 수다를 떨고 싶었다. S를 이해하지 못하면 내가 닫힌 생각을 가진 쪼잔한 선배, 속 좁은 어른이 되는 것만 같아 썩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남자 선배에게 나의 스트레스를 얘기하며 남자의 자존심, 아기를 처음 키우는 아빠의 스트레스에 대해 대신 듣기도 했다. 선배의 얘기를 들으면서 어떤 부분에선 ‘S가 이래서 저럴 수 있겠다.’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은 여전했다. S를 보면 마치 학창 시절 선생님 같았다. 밖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학교로 고스란히 가져와 별일도 아닌 일로 학생들을 잡는 선생님들 말이다. 학생일 때는 ‘저 쌤 오늘 왜 저래?’하면서 친구들과 선생님 욕을 하면서 지나갈 일이었다. 하지만 내가 어른이 되어서 보니 감정이 태도가 되어 사람들을 대하는 것이 썩 좋은 모습은 아니었다.

     

어떻게 하면 S를 이해해 볼 수 있을지, 나는 S와의 관계를 어떻게 가져가야 하는지, 불편해진 이 관계를 어떻게 해야 할지 긴 시간 고민이 많았다. 그러던 중 의외의 생각이 들었다. S의 모습이 나에게 ‘거울 치료(자신이 했던 일을 타인이 하는 것을 봄으로써 자신이 잘못된 것을 깨닫게 되는 것)’가 되면서 내 모습을 돌아보게 되었고 자발적으로 나를 ‘반성의자’에 앉히게 되었다.            


S가 말을 가로채는 것 때문에 스트레스를 겪으면서 ‘이게 굉장히 기분 나쁜 일이구나.‘라는 걸 체감했고 나는 S에게 그런 적이 없었는지 반성하게 되었다. 무의식으로라도 다른 사람의 말은 가로채지 않고, 지레짐작하며 말을 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에 기다리게 되고 조심하게 되었다. 그 외에도, '아침에 밥을 못 먹고, 화장을 못하고 가더라도 지각은 하지 말자. 감정이 태도가 되게 하지 말자. 긍정적인 말, 긍정적인 시선을 가지자. 옆에서 하는 부정적인 말들에 휩쓸리지 말고 내 생각과 마음을 잘 붙들자. 다른 사람 앞에서 겸손을 가장한 셀프디스는 하지 말자.' 등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관계의 한계 설정의 중요성을 또다시 느꼈다.      


“그러므로 관계를 만들어 갈 때는 먼저 나의 능력이 어디까지인지, 마음이 상하더라도 스스로 회복할 수 있는 감정적 한계가 어디까지인지 파악해 두어야 한다. 그리고 그 한계선을 기준으로 아무리 가까운 사람이라도 해도 내 삶까지 망가질 것 같을 때는 '미안하지만 더는 도와줄 수 없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중략) 끝까지 사람을 믿고 사람과 더불어 살기 위해 해야 할 최소한의 장치가 바로 한계 설정인 것이다. (만일 내가 인생을 다시 산다면, 김혜남)     


S 덕분에 나는 반성의 시간을 가지게 되었고 나를 좀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들기 위한 작은 결심을 하게 되었다. 나의 감정적 한계를 마주하게 되었고 고민하는 시간을 가지게 되었다. ‘나를 힘들게 하고 불편하게 하는 사람의 나의 스승이다.’라는 말을 S가 증명해 주고 있는 셈이다(어쩌면 S도 나를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연휴의 마지막 날이다. 내일부터 다시 일상으로 돌아간다. S와 나는 나란히 앉아 업무를 볼 것이고 난 여전히 S가 신경이 쓰일 것이다. ‘감정적 한계 설정’은 아직 미완료이지만 그래도 어제보단 내일이 좀 더 지혜롭게 나을 것이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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