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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설향 Jun 03. 2023

연명 치료 하시겠어요?

 하지 않겠다고 서명을 했다.

엄마는 병원에 있는 것을 답답해하셨다. 병원이 아닌 곳, 집으로 모셔오기에는 통증관리 등 위험요소가 많았지만 엄마가 계시고 싶은 곳에 계시게끔 했다. 이모가 전원주택에서 살고 계시고 감사하게도 이모가 엄마를, 동생을 데리고 있고 싶어 하셨다. 통증관리과 방문간호 등 이런저런 고려할 상황들을 챙긴 후에 엄마를 이모 집으로 모셨다.


그렇게 3주 정도를 이모 집에서 지내셨는데 이틀 전 밤부터 이따금씩 기침을 하기 시작했다. 며칠 전부터 가래가 조금씩 생기더니 그것이 기침으로 이어졌다. 엄마의 기침과 가래에 이모는 조바심이 났던 것 같다. 엄마가 병원을 가야 할 거 같다면 어제 이른 아침부터 전화를 하셨다.


병원 진료시간까지는 2시간이 더 남았고 결정을 해야 했다. 진료시간을 기다렸다가 외래진료를 보고 약을 처방받아서 갈지, 엄마 상태를 먼저 보고 올지, 엄마를 병원으로 데리고 가면 외래로 가야 하는지, 응급실로 가야 할지, 내 차에 태우고 갈지 119를 부를지 말이다.  


우선은 엄마의 상태를 내가 확인하는 게 먼저라는 판단이 섰다. 부랴부랴 준비를 하고 이모 집으로 향했다. ‘끼니는 거르지 말자.’라는 생각에 샌드위치를 하나 샀고, 그래도 마음의 여유를 가져보다는 생각으로 커피까지 들고서 말이다. 마음은 살짝 조급했지만 안전운전도 지키면서 말이다.


이모 집에 도착하니 엄마는 기침과 가래로 많이 힘들어했다. 몸에 힘이 없는 상태에서 기침을 하려니 힘들 수밖에 없었고, 배에 힘이 없으니 가래를 뱉는 것도 어려웠다. 몸에 열감도 있었다. 병원을 가야 할 거 같았다. 30분 거리에 있는 병원을 내 차로 엄마를 데리고 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결국은 119를 불렀고 병원 응급실로 향했다.


엄마는 응급차를 타고 먼저 도착했다. 뒤늦게 응급실에 도착하니 엄마는 응급격리실에서 필요한 검사가 진행 중이었다. 담당선생님이 보호자인 나를 불렀다. 심폐소생술, 인공호흡기 등의 시술, 즉 ‘연명 치료’를 할 것인가 대한 물음이었다. 연명 치료를 하지 않는 것에 대해 엄마와 가족들의 생각은 동일했다. 혈압을 떨어질 경우 약물을 투약하는 것 외에 육체적으로 고통을 가하는 어떤 행위도 하지 않겠다고 대답을 했다. 돌아서서 나오려는데 간호사선생님이 다시 나를 부른다.


“여기 서명 좀 해주세요.”


연명 치료를 하지 않겠다는 것에 동의하는 서류였다. 정신없던 중에 대답은 덤덤하게 했지만 막상 서류를 보고 있으니 눈물부터 터져 나왔다. 선생님 앞에서 눈물을 꾸역꾸역 참아내고는 보호자로서 서명을 하고 응급실 밖으로 나왔다. 힘들어하는 엄마를 보고 있자니 너무 속상하고, 연명치료에 대한 설명을 들으니 이제 정말 마지막이구나 싶고, 엄마가 조금만 덜 힘들었으면 좋겠는데 그게 그렇게 어려운 건가 하는 생각에 서러움이 몰려왔던 것 같다.




엄마는 이전부터 연명 치료를 하지 않겠다고 늘 말씀하셨다. 그 당시에는 자식의 마음은 그렇지 않다며, 내 손으로 엄마의 명을 단축시키는 것과 같은데 그럴 수 없다고 대답을 했던 것 같다. 그런데 막상 마지막 순간이 다가오고 매 순간 힘들어하는 엄마를 보니 마음이 달라졌다. 작은 순간만이라도 단 일분이라도 엄마가 편안했으면 하는 마음이 컸다.


어제는 잠에서 깨서 대뜸 하시는 말씀이 왜 자꾸 엄마를 집으로 데려가려고 하냐는 것이었다. 엄마가 잠꼬대를 하는지 알았다. 병원이 아닌 집에 있겠다는 것은 엄마 본인의 결정과 가족들의 결정이 합쳐진 것이었지만 엄마는 아니었나 보다. 폐쇄적인 환경인 병원에 있는 것을 원치 않으셨지만 막상 병원에 오니 생각이 달라지신 것 같다. 수액과 영양제를 맞고, 상황에 맞게 필요한 주사가 투약이 되니 몸이 조금 편안해지신 듯했다. 집에서 밤마다 통증으로 힘들어하셔서 잠을 제대로 못 주무셨는데 병원에서는 아프다는 말이 없이 그나마 잘 주무셨다.




엄마의 삶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말을 들었을 때 이제 나는 무슨 기도를 해야 하나 싶었다. 재작년 암투병을 하던 후배를 먼저 보내고는 ‘하나님, J가 이제 안 아프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라는 기도가 저절로 나왔다. 후배의 죽음 앞에서 했던 기도를 엄마를 향해서도 할 수 있을까 생각했을 때 아직은 자신이 없었다. 어떤 방향으로든 엄마가 평안했으면 좋겠다고 기도를 했지만, 내 본심은 ‘엄마를 살려주세요.’였다. 


임종을 앞둔 환자의 보호자로 있으면 순간순간 결정해야 할 것들이 많아진다. 물병을 선택하는 것과 물 온도 등의 사소한 것에서부터 마지막 순간에 환자의 거취, 연명 치료의 여부 등 말이다. 선택의 순간에 가족이 할 수 있는 가장 현명한 판단은 환자가 덜 힘든 것, 조금 더 편안한 쪽을 선택하면 되는 것이다. 그 선택이 무엇이건 말이다. 


한 달이 넘는 시간 동안 엄마를 지켜보면서는 기도가 변했다. 하루가 천년 같은 엄마의 남은 삶이 지금보다 조금만 덜 힘들었으면 하는 것이 가장 큰 바람이다. 가족들과 좋은 시간을 보내고 평안히 잠자듯 그렇게 본향, 하늘나라로 가는 것이 가장 큰 바람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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