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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설향 Jul 01. 2023

슬프긴 하지만

배는 고프구나

엄마가 마지막 호흡을 내뱉던 순간은 아빠와 남동생이 함께 있었다. 더욱이 남동생은 엄마의 생체신호가 변하는 그 모든 순간들을 함께 하고 있었다. 약간의 발작과 함께 동공이 변하고 결국엔 맥박을 표시하는 신호가 일자로 변하는 순간을 말이다.


감히 상상할 수 없을, 폭풍과 같았을 그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나는 병원에 도착했다. 엄마는 완전한 평온함 가운데 있었고 아빠와 동생도 한바탕 울음바다를 지난 뒤였다. 엄마 손을 잡아주라는 동생의 말에 하얀 천 속에 덮혀진 엄마 손을 보았다. 청색증이 시작된 엄마의 손을 보며 오열을 해버린 나를 동생이 다독거리며 위로를 해주었다.


순간 정신이 들었다.


‘아! 엄마 귀가 아직 열려 있을 수도 있으니깐 너무 울지 말아야지. 너무 슬프게 엄마를 보내지 말아야지.’


무슨 정신이었을까? 불현듯 생각이 지나갔고 울음을 삼킨 후 정신을 차리고는 엄마의 얼굴을 다시 보고 인사를 건넸다.




간호사실에서 보호자를 불렀다. 아빠와 남동생이 있었지만 그 둘은 엄마의 마지막을 지켜봤다. 그것은 아무에게나 주어지지 않는 복인 동시에 큰 힘겨움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이제부터 보호자로서의 역할은 내가 해야 한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다. 선생님께 갔더니 사망진단서 내용과 매수를 확인해 달라고 하셨다. 언제 울었냐는 듯 정신을 차리고는 서류를 확인했고 그러는 중 장례식장에서 오셔서 엄마를 모셔갔다. 병실에 있던 물품들을 정리했다. 엄마가 결국 먹지 못한 팔도비빔면(당분간 팔도비빔면은 못 먹을 거 같다)과 이모가 엄마 먹인다고 가져온 과일들, 입원할 때 입었던 엄마의 옷까지 모든 물품을 비웠다.


고인에게 사망선고가 내려짐과 동시에 유가족들에게는 결정해야 하는 것들과 행정적인 일들이 줄지어 온다. 우리 가족은 엄마의 죽음을 예측하고 있었기에 옳은(?!) 정신으로 미리 준비를 할 수 있는 기간이 있었다. 장례식장과 장지, 묘의 형태, 조문객수 등을 미리 논의를 해놓은 상태라 허둥대지 않고 장례절차를 밟아갔다.


장례식장에 자리가 없기도 했고, 엄마는 밤늦게 돌아가신 터라 보통 2박 3일 동안 이루어지는 장례는 1박 2일이 일정이 되었다. 다음 날 이른 아침, 방이 만들어진 시간 맞추어 장례식장에 도착했고 엄마의 영정사진부터 전달을 했다. 들어와 있는 음식과 물품들 개수에 대한 설명을 듣고는 언니와 아침부터 챙겨 먹었다. 희한했다. 밥이 먹히겠나 싶었는데, 배가 고프기까지 했다. 이 집 소고깃국은 왜 이리 또 맛있는 건지... 아침을 든든히 먹고는 손님을 맞을 준비가 시작되었다.

 

하루동안 400명 남짓한 조문객이 다녀갔다. 다행히 기독교 식이라 맞절은 하지 않고 목례와 악수로 인사를 했다. 맞절을 했다면 아마도 무릎이 나갔을 거 같다. 조문객을 맞는 틈틈이 추가되는 물건이 들어오면 확인을 하고 사인을 해야 한다. 나중엔 이마저도 할 정신이 없을 때 이종사촌 오빠가 그 역할을 대신해 주었다. 울었다가 웃었다가, 진이 빠지고 정신이 빠지는 하루가 지나갔다.


너무 울었던 탓인지 때가 되면 배가 고팠다. 여유가 생기면 조문 온 지인들 틈에 앉아 허기를 달랬다. 이 집은 소고깃국도 맛있었지만 수육도 참 맛이 있었다.


장례 마지막 날 아침은 더 분주해졌다. 화장터 일정에 맞춰서 장례 일정이 정해진다. 새벽 5시에 일어나 도우미 여사님이 챙겨주신 아침밥을 챙겨 먹고 장례식장을 정리했다. 장례지도사님은 정산을 해야 한다며 나를 찾으셨다. 현금으로 전달해야 할 것들을 챙기고, 최종 확인을 한 후 정산을 마무리했다. 분주하게 오가는 중에 엄마의 발인을 위해 조문객들이 오셨고 엄마의 발인이 준비가 되고 있었다.




슬프긴 하지만 배는 고팠다. 슬프긴 하지만 서류를 확인해야 했고, 이런저런 결정을 해야 했다. 해야 할 일들을 정신 차리고 해야 했다. 울다가도 눈물이 쏙 들어가고 순간순간 정신줄이 잡아지는 것이 신기했다. 이 애도기간을 충분히 잘 보내고 있는 것인가 싶을 정도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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