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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설향 May 29. 2023

애도기간이 시작되셨군요

엄마를 보낼 준비

과도한 스트레스가 왔을 때 나의 신체화 증상은 ‘위의 멈춤’이다. 어린 시절 부모님이 (심하게) 다투시는 모습을 보이면 구역질부터 올라왔다. 인생 첫 직장에서의 첫 일주일을 보내면서도 밥을 제대로 먹지 못한 채 출근을 했다. 이별의 순간에도 며칠을 제대로 먹지 못한 채 보낸 날들도 있다.


서울 병원에서 엄마의 현재와 미래를 듣고는 생각보다는 덤덤했고 괜찮았다. 아주 가까운 지인 몇 명에게만 엄마의 소식을 전했고, 씩씩하지는 않더라도 울지 않고 얘기를 할 수 있었다. ‘난 지금 괜찮구나, 지금의 상황을 잘 마주하고 잘 보내고 있구나.’라고 확신할 수 있었던 것은,


밥이 잘 먹혔다.  

그것도 맛있게 말이다.

그렇게 2주를 잘 보냈다.


3주 차가 시작되었다. 엄마의 거취에 대해 결정을 해야 했고, 이것저것 고려해야 할 것과 알아봐야 할 것이 많았다. 부모님의 형제들에게 ’ 엄마는 지금 이렇습니다.’라며 사실을 전해야 했다. 나는 엄마의 대리인이자 보호자로서 정보를 들어야 했고, 또 주변 사람들에게 전달해야 했다.


육체도 정신도 여유가 없었고, 툭 하고 건드리면 펑하고 터질 상태였다. 앞으로 펼쳐질 어떤 - 엄마가 없는 - 삶에 대한 두려움도 동시에 나에게 찾아왔다.

드디어일까, 마침내일까?

밥이 안 먹힌다. 위가 멈췄다.

2,3일 사이에 살이 3킬로가 빠진 거 같다.

스트레스로 인한 신체화 증상이 시작된 것이다.


기능을 멈춘 내 위를 다시 움직이게 하는 것이 내과가 방법이 아닌 란 걸 잘 알고 있었지만 급한 불이라도 꺼야겠다 싶어 병원을 찾았다. 위가 이렇고 저렇고 이건 다 스트레스 때문이고, 그 스트레스는 이런 것이다라고 선생님께 설명을 드렸다. 2년 전 과호흡을 시작으로 약을 먹었던 것까지 말이다. 언제 끝날지 모를 스트레스이기에 다시 정신과를 가볼 것을 권유하셨다. 누구와의 싸움인지는 모르겠지만 왜인지 지는 기분이 들었다. 그렇지만 선생님 말씀대로 언제 끝날 스트레스인지 모르기에 조금의 무거운 마음을 안고 다시 병원으로 향했다.


”어떻게 지내셨어요? “

(나는 이 질문이 참 마음에 든다.)


진료기록이 있기에 긴 설명이 없이 ‘엄마의 현재가 지금 이래서 앞으로 이런 일이 있을 거예요. 그래서 내 현재가 이렇습니다.‘라고 나를 설명했다.



“애도기간이 시작되셨군요.”


그렇게 엄마를 보낼 준비가 시작되었다.




(병원에서 2주 치 받아온 약은 3일만 먹었고, 위장은 지금은 제 할 일을 잘하고 있는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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