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슈가정원 Sep 15. 2022

<꽃길만 걸으세요>

내가 뿌리내려진 꽃길

     

“축하합니다! 축하합니다! 당신의 생일을 축하합니다!”


나의 마흔 살 생일날, 퇴근길 내가 요청했던 아이스크림케이크와 치킨, 육회를 들고 오는 신랑의 오른손에만 주렁주렁 봉지들이 들려있고 왼손은 살포시 뒤로 숨겨서 들어왔다.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지만 일단 모로쇠로 일관하며 괜히 화장실을 다녀왔고, 내 앞에 신랑은 짠~~작고 소박한 꽃다발을 내밀었다.      

연애 8년 차에 결혼해서 결혼 11년 차인 우리지만 생일이나 기념일에 꽃다발을 준 적이 없는 신랑에게 올해 결혼기념일에 선포하듯 말했다.


“나도 이제 기념일에는 꽃이 받고 싶어. 내가 말하지 않아도 당신이 준비했음 좋겠어.”


사뭇 비장하던 나의 주문을 잊지 않고 그는 처음으로 나에게 꽃다발을 안겨주었다. 파란 수국이 소담하게 핀 드라이플라워에, 포장지에는 【꽃길만 걸으세요】가 적혀 있던 나의 첫 꽃다발.

문구를 보고선 속으로 ‘사람이 어찌 꽃길만 걸으며 살 수 있을까? 널린 길이 돌밭 길인데...!

예전부터 별로였던 말이야!’ 하면서 괜히 신경 거슬리는 그 문구를 마음 한 켠에 슬쩍 밀어두고선, 가족들과 맛있는 식사와 이야기들로 나의 불혹을 축하하며 그 날은 지나갔다.     


그리고 며칠 후, 햇볕을 보면 색이 바랜다는 이야기에 거실 복도 쪽 책장 위에 고이 모셔놓았던 꽃다발이 강하게 불던 바람에 툭 떨어졌고, 마침 지나가던 딸에게 주워서 나에게 가져 달라고 했다. 아이는 꽃다발을 건네주면서 물었다.     


엄마! 어떻게 꽃길만 걸을 수 있어요?”

? ? 예쁜 꽃길만 걸으면서 살아가길 원해서 만들어진 말이겠지!”

세상에 길이 얼마나 많은데... 그리고 나는 꽃길 싫어요.”

왜 꽃길이 싫을까?”

그 안에 들어가면 벌들이랑 벌레가 많아서 싫어요.”     


아주 짧은 대화였지만 나는 아이의 말에 내가 이 문장을 별로라고 여겼던 이유가 명확해졌다.

우리의 인생은 결코 꽃길만 걸을 수 없다는 사실을 나도, 이 아이도 알고 있던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꿈꾼다. 탄탄대로의 잘 다듬어진 향기 가득한 꽃길만을 걸으면서 살아가기를 누구든 소망한다. 특히 나의 분신 같은 나의 자녀들은 더더욱 곱게 곱게 키워서 어여쁜 꽃들이 가득한 길로만 걸었으면 하고 말이다.      


그러나 그 꽃길 역시 누군가의 땀방울과 노력으로 잘 다듬어진 길이다. 그냥 자연적으로 사람들이 편안하게 꽃을 감상하면서 걸을 수 있는 터를 내어주는 꽃길은 없다. 내가 지금 걷는 곳은 결국 다른 이의 희생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다.


우린 단지, 무임승차로 이 아름다운 길을 감상하고 즐기고 있을 뿐이다. 그래서 잠시 길을 거느리며 꽃의 향기와 색감에 매료되어 꽃길에 대한 좋은 기억만 간직한 채 살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쉽게 밟을 수 있었던 길이기에 또 금방 잊어버리고 몇 장의 사진을 통해서, 좋고 아름다웠던 그때의 기억만을 소환하여 “꽃길만 걷자” 는 축복의 메시지를 서로 나누며 살아간다.      


나도 꽃길만을 걸었으면 좋겠다고 나의 신랑은 말한다. 자기가 더 열심히 살아서 꽃길을 내어주면 나는 우아하게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하면서 살았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가끔 건넨다. 정말 눈물 나게 감사한 마음이고 지금까지 잘 지켜주고 있는 이 사람의 말에 나는 행복하게 지내왔다. 타인의존적인 나의 성향에 그는 적합한 반려인이요, 나의 보호자이다. 지금껏 나는 그가 내어준 꽃길을 쫄래쫄래 따라 걸어왔던 셈이다.


물론 온전히 그가 혼자서 일궈낸 것은 아니다. 내가 있었기에 그도 방향을 잡고 더 편하고 좋은 길을 내려고 애썼을 것이고, 나는 그가 일궈놓은 길을 걸으며 항상 “애쓴다, 고맙다”는 말의 입장료를 내고 걸어왔다. 동행하는 기분이지만 그저 입장료를 내는 정도의 지분을 가지고 있었다고 하면 될까?     


하지만 이젠 달라지려 한다. 나도 내가 만들어가는 나의 꽃길을 걸어볼 생각이다.

다른 이의 희생이 아닌 내 의지로 길을 트고 씨앗을 심을 땅을 일구고, 잡초를 뽑고, 돌멩이도 골라내면서 나의 취향에 맞는 꽃들을 감상하며 그윽한 꽃향기가 가득한 길을.......!      


우리는 인생이라는 길고 긴 길을 걸으며 살아간다. 나의 생각과 행동들로 방향이 결정되고, 무수한 점들의 노력과 좌절과 성공이 있어야 하나의 선이 되어 길이 된다. 그 길들은 가시밭길일 수도 있고, 산골짜기 길, 쭉쭉 뻗은 고속도로, 울퉁불퉁한 비포장도로 등 무수한 모습으로 우리 곁에 있다.


살아가면서 이런 길들을 다 걷고 뛰어봐야 비로소 잘 정돈된 흔히,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꽃길’을 만날 수 있다. 험한 길 한 번 다녀본 적이 없는 이에게 내어진 꽃길은 그저 일반적인 길일 뿐, 그 이상의 의미가 있을 수 없다.      


【꽃길만 걸으세요】의 진짜 의미는 【나의 가치가 녹아있는 길을 걸으세요】가 아닐까?     


나는 나의 아이들도 자신의 꽃길을 가꾸며 걸어가길 간절히 원한다. 금지옥엽, ‘불면 날아갈라’, ‘거세게 잡으면 뿌러질라’ 온갖 걱정과 불안감에 부모라는 이름으로 잘 정비된 길만을 걷게 하는 것은 긴 인생의 길에서는 아주 잠깐이면 된다.


아이가 자기 의지가 생기는 시기가 오면 그때부터는 본인의 가치판단으로 일궈진 길들이 시작된다. 동행해주되 결코 내 의지로 길을 터주고 이정표를 세우는 일은 최대한 지양하며 우리 아이들만의 멋진 꽃길을 개척하고 걸어갈 수 있도록 지지해주는 엄마가 되자고 다짐한다.      


나는 나의 꽃길을, 아이들은 각자의 개성이 묻어나는 꽃길을, 나의 반려인도 이젠 자신만의 갈래 길을 만들어 혼자만의 꽃길을 걸으면서, 우리는 ‘가족’이라는 정원으로 함께 들어오길 소망하고 소망해본다.      

그리고 진심을 전해본다.


“모두들, 꽃길만 걸으세요! 내가 뿌리내려진 꽃길을요!!”          

이전 02화 알아차림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