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4.26.
세종시에서 하는 도심 속캠핑행사가 있는데 같이 갈 건지 물어보는 남편에게 '예스!'라고 했던 이유 중 하나는 이 도서관에 가보고 싶은 것이었다. 오빠가 세종시에 살고 있어, 몇 년 전에 놀러 왔을 때 시간이 없어서 잠시 머물렀는데 무척 좋았기 때문이다.
금요일 오후 서둘러 출발해 어두워져서 세종에 도착했다. 캠핑을 참 좋아했었는데 나이가 드니 수면 루틴이 깨지면 몸이 힘들어 서서히 캠핑에서 멀어지게 되었다. 그래서 캠핑카가 있어도 남편이 아들과 같이 가는 경우가 많았다. 이번엔 모처럼 캠핑을 온 데다, 행사로 온 것이다 보니 100여 대가 넘는 캠핑카가 있고, 푸드트럭, 공연도 있어 왠지 설레는 마음이 들었다.
세종시에는 어울링 자전거를 탈 수가 있는데 24시간 동안 1000원 밖에 안 해서 부담 없이 자전거 여행하기에 참 좋았다. 토요일 오전, 간단히 아침을 챙겨 먹고 뜨거운 봄 햇살을 받으며 세종 호수공원을 자전거로 달렸다. 달리다 보니 도서관이 보인다. 남편과 아들은 도서관에 썩 가고 싶어 하지 않아, 오후에 딸과 둘이서 오려고 했는데 마침 도서관이 보여서 온 가족이 도서관에 들어갔다. 캠핑카에 화장실이 있지만 불편함이 있어 공용 화장실을 종종 이용하는데 남편은 이 도서관 화장실에 비데가 있다며 좋아한다. 아들은 도서관에서 책을 읽고 싶지는 않다며 로비에서 휴대폰을 하며 쉰다고 한다.
딸과 함께 2층을 둘러보았다. 딸은 역시나 일반자료실의 400번 과학 코너에 머물러 우주과학 책을 살펴본다. 성인이 읽는 책이 많아 어려운지 선뜻 읽고 싶은 책을 고르지는 못하고 책을 살펴보고 있다. 그러다 책 한 권을 고르고 앉을 때가 없나 찾다 보니 2층 안쪽에 청소년 코너가 있다. 오! 도서관을 여러 곳 다녀봐도 청소년 도서가 따로 있는 것은 처음 보았다. 도서 라벨에도 청소년이라 적혀있다. 보통의 도서관은 어린이 자료실과 종합 자료실로 되어 있어 중학생인 아이들이 책을 어디서 골라야 할지 애매했던 적이 많았는데 참 반가웠다. 딸도 좋아하며 여기서 책을 읽다가 가자고 한다.
둘이서 읽을 책을 골랐다. 청소년 서가 바로 뒤에 태극무늬처럼 빨강, 파랑 빈백 두 개가 나란히 놓여있다. 우리를 위한 자리 같다. 그곳에 앉아 책을 읽었다. 넓은 도서관의 한 구석이라 발소리 하나 들리지 않고, 사람도 별로 없고, 에어컨 백색소음만이 흐르고 있다. 너무 조용하고 푹신한 나머지... 솔솔 잠이 온다. 아니나 다를까 조용해진 딸을 보니 자고 있다. 자고 있는 딸을 보니 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까칠하긴 하지만 쿨하고 긍정적인 아이, 내가 키운 것보다 스스로 훨씬 잘 자란 딸을 보니 사랑스럽고 고맙다.
전부터 읽고 싶던 찰스디킨즈의 [두 도시 이야기]를 읽었다. 청소년 도서라 청소년의 눈높이에 맞춰 번역된 것이라 완역본은 아니지만 쉽게 읽히는 장점이 있으리라 생각했다. 시작부터 흥미진진하다. 역시 찰스 디킨즈다. 집중해서 읽고 있는데 딸은 책 속에 나온 우주 쓰레기가 어디에 있는지 알아볼 수 있는 어플을 찾아 휴대폰을 보여준다. 우주 쓰레기에 대해 속닥속닥 이야기를 나누며 관심사를 공유하는 이 시간이 참 소중하다. 이제 내년이면 고등학생이 될 텐데 이렇게 함께 나눌 수 있는 여유 시간이 있을까? 벌써 아쉽다.
남편과 아들은 도서관에는 더 볼일이 없다며(?) 둘이서 밥을 먹고 온다고 한다. 취향에 따라 따로, 또 같이 보낼 수 있어서 좋다. 배가 고픈 줄도 모르고 책을 읽다가 잤다가 딸과 함께 세 시간 남짓 시간을 보냈다. 더 이상 할 일이 없어 기다리다 지친 남편과 아들이 이제 가자고 해서 도서관을 나선다. 도서관을 나서며 도서관을 한 번 둘러보았다. 학교에서 도서부 활동을 하고 있는 딸은 서가를 살펴보며 '오~ 여기 도서관은 북엔드가 좋은 거네' 란다. 역시 뭘 알아야 남들이 보지 못한 것도 보인다.
층고가 높아 개방감이 느껴지는 어린이 자료실은 한 쪽 면이 통유리로 되어있다. 통유리에서 보이는 바깥에는 놀이터가 있다. 놀이터가 보이는 창가에서 책에 집중해서 읽고 있는 아이들이 있어 대견했는데 막상 다가가보니 조금은 안쓰러웠다. 문제집을 펼쳐놓고 있기 때문이다. 재미있는 책을 읽고 책 속에 빠져있다면 놀이터 보다 더 신날 텐데. 얼른 오늘 풀어야 할 문제집을 다 풀고, 즐거운 책 속 세상에 빠져들 수 있기를 바라본다. 그래도 이런 공간에서 공부든 독서든 하며 보낼 수 있는 아이들에게 괜히 샘이 난다. 내가 어릴 때도 이런 공간이 근처에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어릴 때 내가 읽을 수 있었던 건 우리 집에 언니가 몹시 아끼던 세계명작 전집 말고는 떠오르지 않는다.
다른 시설은 특별히 그런 생각이 들지 않는데 멋진 도서관이 있는 도시는 늘 부럽다. 내가 살고 있는 작은 도시의 도서관은 주말에 가면 주차하기도 힘들고 앉을자리를 찾기도 힘들다. 주말에 와도 어디 구석인가는 내가 숨어들 수 있는 자리가 있는 이런 도서관을 바라고 바란다.
캠핑카로 돌아와 시간을 보내다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옥상정원을 개방하는 행사가 있어 8시에 자전거를 타고 정부종합청사로 향했다. 옥상정원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니 낮에 갔던 국립세종도서관이 바로 앞에 보인다. 주말 저녁이라 운영시간이 아니라서 불은 꺼져있지만, 책 모양을 형상화한 도서관이 웅장하고 멋있다. 세종에 살고 있는 오빠가 주말에는 6시까지 밖에 하지 않아 늘 아쉽다고 했던 게 떠오른다. 이용자로서는 그렇지만 저녁이 있는 삶은 도서관 직원에게도 필요하니까.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직접 운영하는 국립도서관이니까 모범이 되어 직원들의 워라밸은 더 지켜주어야겠지!
<국립세종도서관>
-이용시간: 일반자료실(2층), 인문예술자료실(1층) 9:00~21:00 (주말 9:00~18:00)
어린이 자료실(9:00~18:00)
-휴관일: 매월 둘째, 넷째 월요일 (일요일을 제외한 관공서 공휴일)
-대출증 발급은 신분증만 있으면 사는 지역에 상관없이 발급 가능
-대출권수 및 기간: 5 책 14일
-문의전화: 044-900-9114
-주소: 세종특별자치시 다솜3로 48(어진동 6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