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 장생포 지관서가

2024.8.16.

by 인애

나에게 울산은 새로움을 주는 여행지라기보다는 익숙함이 있는 여행지다. 친언니가 살고 있어 자주 방문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익숙하지만 큰 도시라 그런지 갈 때마다 새로움이 있다. 누가 울산을 3대 노잼 도시라고 했던가. 개인의 취향이 다른 것은 당연하지만, 누가 나에게 묻는다면 울산을 유잼 도시라고 당당하게 추천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울산의 볼거리 중에서 웅장한 동해바다와 태화강이 큰 몫을 한다. 이번 울산 여행에서도 장생포 동해바다와 태화강 국가정원을 방문했다. 태화강 국가정원에서는 납량축제를 하고 있었는데 여름밤 대나무 숲에서 귀신과 좀비들을 만난 호러 체험이 특히 기억에 남았다. 아이들도 이번 여름 서울, 부산, 울산을 여행한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이라 이것이라 이야기할 정도였다.


장생포 바다는 '지관서가'에서 시간을 보내고자 방문했다. 작년에 가보았던 유니스트에 있는 '지관서가'가 참 좋았어서 이번에는 장생포 바다를 볼 수 있는 '장생포 지관서가'를 찾았다. '장생포 지관서가'는 장생포 문화창고 6층에 위치하고 있다. 장생포 문화창고는 1973년부터 어류용 냉동창고로 쓰이다가 2000년부터 폐건물로 남겨져있었는데 2021년 플라톤 아카데미, SK, 울산시가 협동하여 새롭게 문을 열었다고 한다.

휴가철 연휴에 끼인 날이라 사람이 많을 것이라 생각하고 아침부터 일찍 집을 나섰지만 역시나 남은 자리가 많지 않다. 바다가 보이는 넓은 좌석은 자리가 빌 틈이 없이 사람들로 채워진다. 창가에서는 멋진 장생포 바다와 저 멀리 공장 건물들, 큰 배들을 볼 수 있다. 창가에 자리가 없어서 신발을 벗고 들어가는 공간에 자리 잡았다. 등을 기댈 수 있는 의자도 있고 좌식 테이블도 있어 꽤 편안했다. 책을 읽다 창문을 보면 멋진 장생포 앞바다가 펼쳐져 눈을 쉬기에 좋았다. 바로 앞에 그림책이 전시된 곳이라 아이들이 쿵쿵거리며 지다 다니기도 했지만 책을 고르는 아이들의 모습이라 그런지 예뻐 보였다. 딸은 노트북을 꺼내 독서감상문 방학숙제를 하고, 아들은 오늘 해야 하는 수학 문제집을 푼다.

책을 고르기 위해 서가를 둘러보았다. 지관서가는 각 지점마다 큐레이션 테마가 있다. '장생포 지관서가'는 인생테마 주제 중 '일'을 주요 테마로 큐레이션 했다고 한다. 어류용 창고였고, 울산의 주요 산업인 공장을 풍경으로 가지는 곳이라 잘 어울리는 테마이다. 서가를 둘러보니 2021년 오픈했다고 하는데 책들이 꽤 사람 손을 많이 거친 듯 보인다.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좋아하고 방문하였기 때문이리라. 둘러보니 인문, 철학 분야의 책이 많았다. 읽고 싶은 책이 많아 욕심내어 세 권을 가지고 왔다.

다소 강렬한 책의 제목

여러 책 중에서도 강렬한 제목에 끌려 이 책을 완독 했다. 소비가 경제를 이끌어가는 자본주의 사회에 살다 보니 공감하는 부분이 많아 재미있게 읽었다. 특히 여행지에서의 기념품에 관한 부분이 인상적이었는데 해외에서 구입해 애지중지 소중하게 가방에 넣어오지만 집에 오면 먼지만 쌓이고 그 의미를 다시 찾기 힘든 기념품에 관한 내용이 특히 공감이 가서 웃음이 났다. 사람이 많이 다니는 공간이어서 진지한 책에는 집중이 잘 안 되었는데 이 책은 작가가 내가 아닌가 할 정도로 공감이 잘 돼서 즐겁게 읽었다. 말하듯이 편안하게 서술하는 작가의 글솜씨가 때문일 것이다. 수많은 돈지랄 후에 스스로가 행복한, 소비의 방법을 찾아가는 작가의 여정이 흥미롭다.

옥상의 별빛마당에 올라가 주변을 조망한다. 무더위라 좋은 게 딱 하나 있다면 미세먼지가 없어 경치를 조망하기에 공기가 더없이 맑다는 점이다. 눈이 부시지만 탁 트인 시야에 맑은 풍경이 눈을 떼기가 어려울 정도다. 사진 찍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데도 사진을 부지런히 찍어댔다. 남해의 작고 아기자기한 배가 있는 바다 풍경과는 다른 웅장한 아름다움이 있다. 다음에는 해 질 녘에 풍경을 보고 싶다.


장생포 문화창고에는 지관서가 말고도 볼거리가 가득하다. 특히 3층에는 미디어아트를 볼 수 있는 공간이 있었는데 마침 좋아하는 모네의 전시가 있었다. 익숙한 모네의 그림들로 이루어진 미디어아트였지만 그림과 어울리는 아름다운 클래식 음악 덕분에 20여분을 차분하게 즐길 수 있었다. 역시 예술이 주는 위안은 참 크다. 언젠가 오랑주리 미술관에서 직접 수련을 볼 날을 기대하며.

제법 진지하게 감상하는 딸

지관서가는 울산시에서 유휴 공간을 제공하고, SK에서 재원을 기부하고, 플라톤 아카데미가 기획한 도서공간조성사업이다. 현대에서 지우 미술관도 있다고 알고 있는데, 울산은 산업이 발전한 도시라 이런 기업들이 후원하는 문화공간이 많은 것 같다. SK에서 후원하는 지관서가만 울산에 7개의 지점을 가지고 있다고 하니 울산에 사는 사람들이 참 부럽다. 쉬는 날이면 각각 다른 분위기의 지관서가를 방문해서 책 읽기와 사색의 즐거움을 느낄 수 있지 않을까. 공업이 발달한 도시라 살고 있는 사람들은 또 다른 어려움이 있을 수 있겠지만 말이다.


이번 여름 방학 동안 아이들과 서울과 부산, 울산을 여행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작은 소도시의 집으로 향하며 자꾸 대도시에 살고 싶다는 말을 하게 된다. 대도시에서 누릴 수 있는 그런 문화적 혜택이 너무 부럽다. 그런 말을 하는 엄마에게 아이들은 작은 도시의 장점과 대도시의 단점을 이야기해 준다. 사랑하는 부모님과 가족들, 모든 추억이 있는 곳이라는 아이들의 말에 말문이 막힌다. 익숙하면 그 소중함을 쉽게 잊게 된다.


40년이 넘게 한 곳에서만 살아온 우물 안 개구리였던 엄마의 삶과는 다르게 아이들이 큰 곳에서 살기를 바라는 마음일까. 아니면 좋은 대학을 보내서 남들이 성공했다고 여기는 엄마가 되고 싶은 것일까. 이 대화의 결론은 또 공부 열심히 해서 서울로 대학가라는 잔소리로 끝이 난다.


<장생포 지관서가>

-운영시간: 10:00~21:00 (매주 월요일 정기 휴무)

-주소: 울산시 남구 장생포 338-2 장생포 문화창고 6-7

-도서 대여는 되지 않고 열람만 가능

-카페는 울산 남구 시니어 클럽에서 운영하여 저렴하나 음료 나오는데 다소 시간은 오래 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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