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개의 다른 삶 사이에서 고뇌하는 한 인간에 대한 이야기
- 서지사항
책제목: 길모퉁이 카페
작가: 프랑수아즈 사강 (Françoise Sagan)
출판사: 소담출판사
출판연도: 2022.02.15
(Original text published in 1976 /
entitled Des Yeux de Soie)
프랑수아즈 사강의 <<길모퉁이 카페>> 중
<이탈리아의 하늘>
젊음과 과거에 대한 희망과 열정, 다양한 형태의 로맨스, 그리고 등장인물 간의 미묘한 감정 변화와 밀고 당기기는 프랑수아즈 사강의 글에서 종종 찾아볼 수 있다. 사강 개인의 성향과 프랑스 문화가 녹아있는 이런 소재들은 그녀의 글에서 생생하게 발현되고, 그래서 사강의 글은 솔직하고 우아하다.
<이탈리아의 하늘> 은 사강의 단편소설로 주인공 마일스는 이탈리아에서의 기억과 현재 사이에서 혼란스러워 한다. 영국 이튼 출신인 마일스는 골프와 테니스를 즐기는 상류층 청년으로 참전 중 부상을 당해 이탈리아의 시골 농장에서 치료를 받으며 머물게 되고, 그 곳에서 말이 통하지 않는 이탈리아 여자, 루이지아, 를 만나게 된다. 자신의 출신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의 장소에서 느낀 따뜻하고 안락한 감정이 마일스의 기억에 강하게 새겨져 그는 영국으로 돌아와서도 이탈리아에서의 기억을 추억한다.
사강은 <이탈리아의 하늘> 에서 마일스를 통해 표면적인 삶과 내면의 삶 사이에서 고민하는 인간의 심리에 대해 묘사하고, 낯선 장소에서 낯선 사람들에 둘러 쌓이게 된 사건을 통해 변화하는 개인의 심리를 이야기한다.
이탈리아라는 언어도 통하지 않는 낯선 곳에서 마일스는 다리가 부러져 자신의 의지대로 움직이지도 못하고 소통도 불가능한 상황에 놓이지만 알 수 없는 편안함과 친근감을 느끼는데, 이것은 마치 우리가 낯선 나라로 여행을 갔을 때 어느 누구도 나를 모른다는 안도감과 거기서 오는 해방 그리고 자유와 유사한 감정일 것이다.
전혀 경험해 보지 않은 장소와 소통이 되지 않는 장소는 두려움을 주지만 동시에 그것은 자극적이고 흥미로운 경험으로 변하게 된다. 마일스는 어쩌면 낯선 장소와 자신의 의지대로 할 수 없는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루이지아에서 피난처를 찾은 것일까.
루이지아와 특별한 사이가 되면서 이탈리아와 농장은 더 이상 낯설지 않았고, 힘들고 고통스러울 때마다 떠올릴 수 있는 휴식의 기억이 되었다. 마일스는 루이지아를 진정으로 사랑한 것보다는 오히려 그 상황을 극복하기 위한 수단으로 선택했고, 그녀는 안식을 주는 상징이 되었다. 또한, 마일스는 고향에 여자가 있었음에도 이탈리아 여자를 사랑하게 되는데, 동시에 두 여자를 사랑하는 남자의 복잡한 감정을 엿볼 수 있다. 이런 기존의 연인 (정부) 이 있음에도 다른 연인 (미스트리스) 을 만나는 컨셉은 사강의 다른 소설들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게다가 다른 문화, 다른 언어, 그리고 소통의 부재에서 느껴지는 유대감과 애정의 실체에 대해서도 살펴봐야 한다. 마일스가 루이지아에게 느끼는 애정은 사랑의 감정이었을까? 마일스는 다친 다리, 더 이상은 스포츠를 잘할 수 없고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지 못할 수도 있다는 두려움, 그리고 집으로 돌아가지 못할 수도 있다는 개인적인 걱정을 잊고 자신의 관심을 다른 곳으로 옮기기 위해 애정이라는 감정을 이용한다. 루이지아에 대한 애정의 의미를 어쩌면 마일스 자신도 이미 알고 있었던 것 같다: “‘내일 떠나요, 루이지아.’ 마일스는 루이지아가 잘 알아듣도록 천천히 같은 말을 두세 번 반복했다. 루이지아가 시선을 피하는 것을 보자 마일스는 자신이 바보 천치에 야만인 같다고 느꼈다” (223).
그럼에도, 다른 문화권의 사람들이 서로 사랑하고 언어가 통하지 않지만 관계를 맺는 사례들이 분명 존재한다. 소통할 수 없다고 생각했던 대상에 대한 애정은 실제일 수도 있고 허상일 수도 있다. 언어를 통한 소통은 가장 쉽고 직관적인 소통의 방식이지만, 눈 맞춤, 몸짓과 같은 비언어적 소통은 어쩌면 언어적 소통보다도 깊고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을지도 모른다.
<이탈리아의 하늘> 은 여성인 작가가 남성의 시선으로 느끼는 감정의 변화를 자세하게 묘사한 작품이다. 사강은 남성의 시선에서 느끼는 성에 대한 개념을 뛰어넘어 인간과 인간 사이의 관계와 애정에 대해 보여주며, 표면적인 삶과 열망하는 삶 사이에서 고민하는 모든 인간들의 고뇌를 이야기한다. 사강이 보여주는 인간관계와 그 속의 심리묘사는 날카롭고 직설적이어서 그녀의 글을 읽으면 마치 자신의 이야기처럼 느껴져 얼굴이 붉어지다가도 이내 매료되어 계속 읽게 된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 나 <<슬픔이여 안녕>> 같은 사강의 유명한 장편소설들은 여성의 시선에 집중하지만, <이탈리아의 하늘> 에서는 남성의 시선에서 이야기한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단순한 로맨스를 넘어서 인간의 솔직한 심리를 공감하고 싶은 독자들이라면 즐겁게 읽을 수 있는 짧고 강렬하면서도 여운이 남는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