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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련 이다겸 Oct 10. 2021

내 안의, 그녀

  

  그리움이 껌처럼 착 달라붙는 아담한 여인의 이야기다. 항상 밝은 얼굴, 낫낫한 성격에 누구에게나 인정스러운 그는 보통 키에 얼굴이 작고 하얀 피부에 웨이브가 있는 머리는 정갈하고 단아하다.

  가족을 잘 챙긴다. 어느 날 도시락을 들고 가는 딸을 위해 밥을 짓는다. 홍합과 소고기를 다져서 갖은양념으로 밥을 볶은 다음 야채 속을 넣어서 김밥을 만다. 맛과 영양을 한꺼번에 누린 엄마표 김밥은 유명세를 떨쳤다.

  가족 노트가 있다. 네 명의 자녀들이 태어날 때의 가족 분위기가 메모되어 있다. 첫 돌날, 첫째는 실, 둘째는 돈, 셋째는 연필, 넷째는 책을 집었다. 가족이 모이면 가끔씩 돌날 집었던 물건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며 웃음을 자아낸다. 실을 집은 첫째는 오래 살아도 민폐라며 농담 섞인 걱정을 하기도 한다.

  가족 생일날은 촛불을 켠다. 생일날 아침에는 소담스러운 교자상이 차려진다. 미역국과 팥밥, 나물, 생선, 과일, 떡, 정화수 한 그릇을 놓는다. 옆에는 돈을 가지런히 놓고 책을 펼쳐 놓고 두 손을 모아 기도를 한다. 오랜 세월 세뇌가 된 딸도 결혼해서 그녀가 하던 모습을 그대로 하고 있다.     

   그녀는 일찍 엄마를 여의고 마음씨 좋은 새엄마 곁에서 자랐다. 한 살 연하의 남편과 결혼했다. 남편은 깔끔하고 본인 위주의 삶을 살아 스트레스를 주는 스타일이었다. 의복, 식단은 채식주의, 식물성 단백질 위주로 까다로웠다. 열 번 손을 씻으면 열 번 로션을 발라야 하는 남편이다. 그녀는 흰색을 좋아하고 집안은 먼지 한 점 없이 깔끔하다. 내조도 잘하였다. 

   어느 날 집안 청소를 하다 선반 위 물체가 머리 위에 떨어졌다. 순간 눈앞이 캄캄해 일어설 수가 없어 한동안 앉아 있었다. 그날 이후 기억력이 조금씩 없어진다고 한다.

  병원에서 알츠하이머 초기 진단을 받았다. 유명한 의사를 찾아 약물 치료를 받고, 시간이 흐르면서 주간 보호 시설 프로그램 참여도 즐겁게 하였다. 일상생활에 잘 적응하던 어느 날 행동에 변화가 왔다. 그녀는 큰 대야에 물을 담아 평소 아끼던 코트 등 옷을 적셔 아파트 문 앞에 버렸다. 하얀 티슈를 찢어 세모. 네모 모양 등을 만들어 아파트 하단 나무 위에 던졌다. 눈이 내린 것 같은 나무 위를 매일 청소를 하는 남편을 보고 청소 아주머니는 자기가 치우겠다고 걱정하지 말라고 한다. 

  입원 문제로 가족회의를 하였다. 남편은 입원에 반대하며 아직은 자신이 책임질 수 있다고 한다. 자녀들 앞에서 힘들다는 푸념도 했지만 아내를 잘 보호하고 사이가 좋았다. 

  몇 년의 세월이 흘렀다. 친구 만나러 가서 집을 찾아오지 못하는 일이 생겼다. 지구대에 신고를 하고, 온 가족이 흩어져서 아파트 주변과 먼 거리까지 몇 시간을 찾아도 찾을 수가 없었다. 늦은 시간 힘없이 앉아 있는데 지구대에서 연락이 왔다. 정신병원에서 찾았다고.. 그녀는 집에 와서 힘들었던 시간은 잊어버리고 가족이 다 모였다고 좋아하며 환하게 웃는다. 


  집에서 보호가 힘들어 입원을 하였다. 화초에 물 주는 것 좋아하고, 기억이 있을 때는 주변 환자들한테 도움을 준다. 누워있는 환자에게 말동무도 되어 주고 수건에 물을 적셔 얼굴도 닦아 주는 그녀를 간호사들은 착한 치매라고 이야기한다. 

  우리의 과제는 건강한 노후를 보내는 것이다. 남보다 일찍 치매를 겪기 시작한 그녀를 생각하면 늘 가슴에 무거운 돌이 얹힌다. 달려가서 눈을 맞추며 따뜻한 온기를 나눌 수 있는 많은 날, 마음속 우물을 퍼 올렸다. 그녀는 시간을 넘나들며 젊은 시절의 추억에 머물러 있었다.      

   ‘운동 알약’으로 알츠하이머 치료하는 날이 온다는 소식을 접하면서 희망을 갖고 간호하는 남편의 정성에도 불구하고 건강이 나빠지고 있음이 눈에 와닿았다. 병원에서는 일주일에 2번씩 링거액으로 야위어가는 몸을 적셔주었지만 걸어서 다니던 쇠잔해진 몸은 병실 밖으로 나가는 걸 막고 있었다.  

   전화 음이 새벽을 깨웠다. 간호사로부터 환자의 호흡이 좋지 않다는 연락이 왔다. 딸은 수화기를 들고 마음의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 정신 차려 병원으로 향했다. 편안한 모습으로 누워 말을 알아들었다. “이제 속세의 모든 것 내려놓고 마음 편히 가세요. 아버지는 저희들이 잘 모실게요.” 라며 귀엣말로 전했다. 손에 힘이 주어지며 눈가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따뜻한 손길로 현세現世에서의 마지막 사랑을 나누었다.    그녀가 떠났다. 세상은 일순간에 텅 빈 풍경이 되었다. 내 안에서 영원히 숨 쉬고 있는 공기와도 같은 엄마라는 단어.. 

  회자정리會者定離를 마음에 담아본다. “이 세상 영원한 것이 없듯이 만남은 반드시 이별이 있다.” 남들보다 조금 일찍 먼 여행을 떠났다. 는 생각을 하며 마음을 다독인다. 

  이제는 세월이란 단어가 아련한 삶의 추억을 조금씩 지워가고 있는 중이다. 눈이 시리도록 청아한 하늘을 보며 사랑스런 그녀를 불러본다. 새삼 엄마에 대한 그리움이 껌처럼 착 달라붙는다. “엄마, 내 엄마여서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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