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아이에 대한 사죄
어린 시절, 내 별명은 울보였다.
누가 말 걸기라도 하면 울고, 툭 건드리기만 하면 울고, 지나가는 사람만 봐도 울고. 뭘 하기만 해도 눈물이 터져나왔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내가 울기만 하면 가족들도, 주변 사람들도 심각해지면서 허둥지둥하며 나를 달래기에 바빴지만, 나중에 가서는 그러려니 하며 무덤덤하게 대한 것도 아마 그 이유 때문일 것이다.
나도 어린시절에는 왜 그렇게 까지 울었는지, 지금 생각해봐도 잘 모르겠다. 친구들이 기껏 나에게 다가와줘도 어른들이 나에게 손 내밀어도 나는 밀어내기에 바빴다.
이유를 굳이 따지고 들어본다면... 아마 무서웠기 때문이지 않을까? 많은 어린 아이들이 그렇듯 나의 세계는 좁았다. 내 세계에는 어머니를 비롯한 가족들이 전부였다. 유치원에 들어가면서부터 그 세계가 갑자기 넓어지려고 했으니, 난생 처음 느껴보는 압도적인 두려움과 어색함이 나를 덮친게 아닐까 싶다.
나는 울지 않는 날이 없었다. 사소한 것에도 겁을 먹고 울었고, 내게 다가오는 사람을 밀어내기만 했다. 그러니 주변 사람들이 나에게 질리기 시작한 것도 당연한 것이 아니었을까?
하지만 이런 나에게도 끈질기게 다가와 준 친구가 있었다. 이름은 기억나지 않지만 얼굴만큼은 또렷하게 기억난다. 내가 아무리 울고, 소리지르고, 밀어내도 그 아이는 나에게 끈질기게 다가왔다. 나는 그 아이를 친구라고 생각해본 적도 없고 무서워했지만, 그 아이는 나를 친구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르지.
내가 유치원에서 마지막으로 울었던 것은 이별의 시간이 다가왔을 때였다. 오랫동안 함께 해왔던 선생님과 이별하고, 나에게 다가왔던 그 아이와 영영 보지 못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나는 그 어느 때보다 서럽게 울었다. 아마도 나는 어느순간부터 그 아이를 친구라고 생각했던 걸지도 모르겠다.
그 아이는 조용히 위로했다. 어쩌면 맨날 울던 내가 마지막에 그런 반응을 보이니까 어이가 없었을까? 아니면 나처럼 슬퍼했을까. 마음을 내가 알 턱이 없는 노릇이다. 나는 그저 내 두려움 때문의 소중한 친구와의 시간을 헛으로 보냈다는 것을 후회할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1학년이 됐을 시기였다. 나는 같은 반 아이가 돼지라고 놀렸던 것 때문에 여느 때처럼 울음이 터져나오려고 했다. 그 바로 직전에 어떤 말이 들려왔다.
"야. 놀리면 안돼. 쟤 울보야. 툭하면 울어."
그 말이 얼마나 나를 부끄럽게 했던지! 나는 울기에만 바빠서 주변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보고 있는지는 신경쓰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나를 못마땅하게 여긴 사람도 분명히 있었을텐데. (그 아이도 나를 좋지 않은 시선으로 봤을까?) 나는 그제서야 주변 이들이 나를 어떻게 보고 있는지 깨달았다. 눈을 떠 보니 보였다. 그것은 지친듯한 시선.
나는 그 날 이후로 다시는 울지 않기로 결심했다. 나 자신이 너무 부끄러웠고 다른 이를 더이상 밀어내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그날. 그 별것도 아닌 말이 나에게 큰 충격을 주었기 때문에. 사소한 말이 나를 지금의 모습으로 바꾸게 해주었다.
이것이 내가 울지 않게된 이유다. 나는 맨날 울던 어린시절과 비교해서 다른 사람이라고 생각될 정도로 울지 않게 됐다. 언제부터 였을까. 울지 않으려고 억지로 참다보니 진짜 슬플 때도 눈물이 나오지 않게 되었달까.
그래도 가끔은 진짜 울고 싶을 때는 눈물을 흘릴 수 있게 되었으면 좋겠다. 언젠가 그 아이를 다시 만나게 된다면, 그 땐 친구로서 기쁨의 눈물을 흘릴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