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회사에서 인정받고 있는지 아닌지를 알 수밖에 없는 진실의 순간이 있습니다.
바로 "퇴사통보"시점입니다.
회사에서 내가 꼭 필요한 인재였고 평가받고 있었다면 당연히 퇴사를 만류합니다.
연봉을 올려주겠다, 직급을 높여주겠다, 다른 업무나 프로젝트를 맡기겠다 등 여러 협상을 겁니다.
하지만 그래 알겠다고 덤덤히 말하거나 내심 기뻐하는 모습까지 보인다면 회사에게 나는 결국 그저그런 존재였거나 나가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사람이었던 것이죠.
그러면 어떻게 하면 퇴사통보시에 붙잡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요?
퇴사통보시에 붙잡는다는 말은 회사가 기울어갈 때도 마지막까지 내치지 않을 사람이란 뜻이고, 또 다른 회사에서도 탐을 낼 인재란 말과 같습니다.
세 가지 중 하나 이상 해당되는 사람이라면 회사에서 최소한 한 번은 붙잡을 수밖에 없습니다.
(보통 이런 사람은 두 가지, 세 가지 모두 해당되는 경우가 많겠지만요 ㅎㅎ)
1. 멀티플레이어
2. 핵심업무의 키플레이어(일잘러)
3. 근속연수가 오래되고 위아래의 신망이 두터운 직원
멀티플레이어의 퇴사를 만류해야 하는 이유는 단순히 그 사람이 하던 1.5명, 2명분의 업무를 다른 사람들이 나눠하게 되기 때문만이 아닙니다.
그런 멀티플레이어의 퇴사로 인한 파급효과를 무시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1.5명, 2명분의 일을 하던 멀티플레이어의 퇴사는 1명 더 채용해야 하는 인건비 증가는 물론이고,
다른 직원들의 연쇄퇴사를 불러일으키거나, 연쇄퇴사가 없더라도 회사의 인사정책에 적잖은 불신을 갖게 만듭니다.
ㅇ 연쇄퇴사가 일어나는 이유
원래 회사는 정확히 1인당 업무량을 파악하기도 힘들고, 설령 파악했더라도 인건비를 줄이려는 차원에서 딱 1명이 하면 적당한 업무량을 주지 않습니다.
최소한 1.25명분의 일을 준다고 생각하는게 마음도 편하고 현실에 부합할 것입니다.
1.25명분의 일을 1명에게 배정한다고 할 때 원래라면 5명분의 일을 4명에게 맡겨야 합니다.
그런데 2.5명분의 일을 하는 1명의 멀티플레이어가 있다고 해보겠습니다.
그러면 이 팀에는 3명만 배치시키킬 것입니다.(멀티플레이어 2.5명분 + A 1.25명분 + B 1.25명분=5명분 일)
이 상황에서 멀티플레이어가 빠진다?
이제 A, B가 멀티플레이어가 되어서 각각 2.5명분의 일(지금까지 하던 업무량의 2배)을 해내야 하는 상황이 됩니다...
그렇다고 월급을 2배로 올려주는 것도 아니고 멀티플레이어가 빠진 자리를 곧바로 대체해주지도 못하며, 대체하더라도 그 사람은 1.25명분만 할 것이기에 내 업무량은 대략 0.4명분이 무조건 늘어납니다.
무엇보다 내가 멀티플레이어가 되고 싶다고 해서 곧바로 그렇게 될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연쇄퇴사가 일어날 수 있는 이유입니다.
ㅇ 연쇄퇴사가 일어나지 않더라도 회사 인사정책에 불신, 불만이 쌓이는 이유
또 멀티플레이어는 말 그대로 최소 1.5명분, 2명 이상의 일을 하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이런 사람이 퇴사를 했습니다.
남겨진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할가요?
'와... 너무했다. 업무를 줄이건 좀 편한 부서로 옮겨주건 했으면 저 사람이 퇴사 안했을건데.'
'죽도록 일해봐야 배려를 해주는게 아니고 끝까지 일만 시키는구나. 난 절대 저렇게 되지 말아야지. 욕먹지 않게 딱 주어진 것만 적당한 시간에 끝내야겠다. 절대 일 잘한다는 소문나면 안되겠다.'
'일잘러'란 '일을 잘하는 사람'을 뜻하는 요즘 인터넷 용어, MZ세대 용어입니다.
업무공백 차원에서의 핵심업무의 키플레이어, 일잘러가 퇴사하는 것은 당연히 말려야 합니다.
이 부분은 굳이 부연설명이 필요치 않을 것이므로 1번과 같이 다른 측면을 말해보고자 합니다.
핵심업무의 키플레이어란 말 자체에서 느껴지듯이, 그런 직원은 회사 핵심업무의 SWOT를 꿰고 있을 것입니다.
만약 그런 직원이 경쟁사로 이직하면 어떤 일이 벌어지겠습니까?
또 보통 그런 직원은 자연스레 고객사와의 관계를 돈독히 하는 경우가 많은데, 독립을 하면 또 어떻게 되겠습니까?
대기업이나 중견기업같이 규모가 있는 기업은 그나마 핵심인재가 이탈하더라도 회사가 아예 망하는 수준까지는 가지 않을 것입니다.
물론 당장의 타격은 있겠으나 그런 곳들은 이미 시스템으로 돌아가는 회사가 되었을테니, 조금 시간이 걸리더라도 다시 내부에서 육성을 하거나 정 급하면 외부에서 영입을 하면 되니까요.
그런데 아직 그 정도의 인재육성 선순환시스템을 갖추지 못한 곳은 사정이 다릅니다.
핵심업무의 키플레이어가 퇴사하면 그대로 무너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회사가 나름대로 할만큼 했는데도 핵심인재가 회사를 버린 것이 아닌 경우에는, 1번에서 서술한 바와 같이 남아있는 직원들의 사기와 회사에 대한 기대까지 꺽어놓게 됩니다.
'저런 핵심인재조차 푸대접을 받다가 자기 살길을 찾아가는데... 나 따위가 뭐라고. 지금부터 빨리빨리 준비를 해놓아야겠다'
회사는 다소간 능력이 떨어지고 퍼포먼스가 나오지 않는다고 어지간하면 곧바로 해고하지는 않습니다.
그 이유는 회사가 착해서가 아니고 단순히 배보다 배꼽이 더 큰 결과가 나올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정규직은 원칙적으로 회사 경영상태가 현저히 악화된 경우가 아닌한 정리해고가 어렵고, 또 과거에 잘했거나 그럭저럭 평균은 하던 직원인데 한 번 못하거나 일시적인 슬럼프나 가정사로 힘들어한다고 곧바로 잘라버리면 다른 직원들에게 미치는 영향이 절대 긍정적이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업무적인 능력이 그렇게 뛰어나지도 않고 딱히 떠오르는 실적이 없는데도 부장이나 임원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사람을 이런 관점에서 생각을 해봅시다.
보통 그런 사람들은 근속연수가 오래되었거나 회사 창립멤버이면서 위아래의 신망이 두터운 경우일 것입니다.
회사에 대한 충성심 또한 두 말하면 잔소리일테구요.
회사원 중에 순수하게 능력이나 퍼포먼스를 정년퇴직하는 그 순간까지 낼 수 있다고 장담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야구에서 타율은 2할 5푼만 되어도 프로에서 한 자리를 차지할 수 있고 3할이 되면 억대 연봉을 만지는 수준급 타자가 될 수 있으며 3할 5푼을 치면 레전드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정년퇴직까지 30년을 안타, 홈런을 끊임없이 칠거라고 장담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만약 회사가 특별한 업적은 없어도 회사에 오랜기간 충성을 바쳐왔고 위아래 신망이 두터운 직원을 이제 좀 폼이 떨어지고 연봉이 올랐다고 헌신짝처럼 버리면 어떻게 될까요?
그 순간 회사는 직원들에게 어떠한 충성심도 기대하기 어렵게 될 것입니다.
퇴사를 만류한다는 것은 그 직원이 회사가 관리해야 하는 A급 직원이란 말입니다.
승진에 있어서도 배려를 해줄 것이고 회사 사정이 어려워지더라도 마지막까지 지켜려고 노력할 직원입니다.
지금 나는 어떤가?
안타깝게도 저는 현재 1, 2, 3 어디도 해당한다고 자신하게 말하기 어렵습니다.
약간씩은 1, 2, 3에 걸쳐져 있으나 한 쪽 발을 살짝 담근 정도에 해당할까 말까한 수준으로, 제가 내일 퇴사한다고 말하면 회사에서는 "어, 그래"하고 쿨하게 말할 것 같습니다.
사실 오늘 글은 다른 분들을 위한 글인 동시에 저 스스로를 위한 글이기도 합니다.
이왕이면 퇴사한다고 했을 때 - 퇴사에 대한 확고한 결심이 섰더라도 -, 나를 잡아주는게 그래도 기분이 좋지 않겠습니까?
저부터 그런 사람이 되도록 노력해야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