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인이를 추모하며
당신은 자동차를 운전중입니다.
차에는 사랑하는 아내와 아이가 타고 있습니다.
고속도로를 달리다 정체가 시작되어 브레이크를 밟습니다.
그런데 브레이크가 작동하지 않습니다.
이 때 당신은 어떤 생각이 들 것 같습니까?
저는 사람들의 세월호, 정인이 사건에 대한 분노의 본질이 '시스템에 대한 배신감'이라고 생각합니다.
분명히 작동될 것으로 믿었던 시스템이 사실은 작동하지 않았던 것에 대한 분노입니다.
정인이 사건에서 사전에 구축된 아동학대 방지시스템은 제대로 작동했습니다.
어린이집 원장님, 선생님 그리고 정인이를 진찰하신 의사선생님까지 시스템의 구성원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맡은 의무를 다했습니다.
그럼에도 우리사회는 두 눈을 뻔히 뜬 채 천사같은 한 아이의 생명이 사라지는 것을 막지 못했습니다.
우리는 사회시스템을 신뢰하며 살아갑니다.
파란불에 횡단보도를 건너도 차가 나를 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기에 횡단보도를 건널 수 있습니다.
내가 기꺼이 의사에게 내 몸을 맡기는 것은 국가의 공인을 받은 진짜 의사가 나를 수술할 것이란 믿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집으로 돌아가 지친 몸을 누이고 편안히 쉬는 것도 그 집이 정해진 자재와 공법에 따라 국가의 감독하에 안전하게 지어졌을 것이란 믿음 때문입니다.
이러한 분노의 원인을 제대로 파악해야 사회를 바꿀 수 있고 정인이를 온전히 추모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난 1월 정인이 묘소를 다녀왔습니다.
얼마전 태어난 제 자식 때문인지 몹시도 마음이 아팠고 남의 일처럼 생각되지 않았습니다.
어제 검찰은 양모에게 사형을, 양부에게 징역 7년 6개월을 구형했다고 합니다.
다음달 14일 우리 사회가 어떤 판단을 내리는지 법조인, 국민, 한 아이의 아버지로서 지켜보고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