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 새옹지마를 전화위복과 같은 뜻으로만 알고 계신가요?
아마 새옹지마=전화위복이 가장 보편적인 해석일 것입니다.
하지만 새옹지마를 전화위복과 같은 뜻으로만 새기면 너무 수동적이지 않을까요?
어쩌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이 고사에 담긴 더 깊은 뜻, 능동적으로 운명을 바꾸는 전략적 태도일지도 모릅니다.
새옹지마의 고사에서 나오는 말타던 아들이 떨어져 다친 것은 분명한 위기입니다.
지금처럼 지식노동이 보편화되지 않은 시대에 다리를 다쳐 한사람 몫을 하지 못하게 된 것은 심각한 문제입니다.
결혼에서도 불리한 위치에 놓일 것이 뻔했습니다.
그런데 정작 전쟁이 터져 마을의 젊은 장정이 다 끌려가고 노인의 아들만 남았습니다.
이 때도 노인의 아들이 결혼을 못 했을까요?
이런 일은 실제 역사에서도 있었습니다.
제1차 세계대전, 제2차 세계대전에서 영국, 프랑스, 독일, 소련 등 주요 참전국의 수많은 결혼적령기의 젊은 남자들이 죽었기 때문에 새옹지마의 노인 아들처럼 아마 인기가 많았을 것입니다.
새옹지마는 환경이나 주어진 조건이 바뀌면, 기회가 위기가 되고 위기가 기회로 변하며 신세와 처지가 한 순간에 바뀔 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고사입니다.
사람의 인력으로 닿지 못하는 부분은 기도할 수밖에 없다고 치더라도,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은 하면서 기도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내가 잘하고 있다면 그걸 나의 능력에서만 찾지 말고 어떤 조건, 환경이 갖춰졌기에 내가 잘하고 있을 수 있는지를 곰곰히 생각해서 위기를 찾아내어 미리 대비해고,
반대로 지금 내가 힘들고 어려운 상황이라면 어떤 조건, 환경 때문에 내가 잘 안풀리는지를 숙고해서 그 조건이나 환경을 바꿔버리는 노력을 해야 합니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했습니다.
주어진 환경과 조건에 무조건적으로 순응하지 말고 적극적으로 운명을 개척해나가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