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저기 있어야 하는데 ······
수능을 한 달여 정도 남기고 있던 어느 날이었다. 아침에 눈을 떴을 때부터 오늘따라 이상하게 머리가 아파왔다. 나는 어지러운 상태로 짐을 챙겨 나와 간신히 학원 버스에 올라탔다.
학원 버스 뒷자리에 앉아 평소대로 영어 단어장을 꺼내 영어 단어를 외우려고 했다. 하지만 글자를 읽는 순간 머리가 징하게 울렸다. 갑자기 멀미가 나고 속이 아파왔다. 갑자기 왜 이러지? 차에 계속 타고 있는 것 자체가 고역이었다. 나는 창문을 열어 최대한 바깥공기를 들이마시려 했다. 먼 곳을 바라보며 계속 생각을 환기시켰다. 괜찮아, 괜찮아. 답답한 차 안에서 빨리 학원에 도착하기만을 기도했다.
차가 학원에 도착하자 나는 가장 먼저 내려 학원 건물 앞 화단에 구토를 했다. 먹은 것이 없으니 쓰디쓴 위액만에 혀 안에 감돌았다. 한참을 구역질을 하다 힘겹게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봤다. 어지러웠다. 나는 입 주변을 닦고 외로이 교실에 올라가 가방을 풀었다. 눈 앞이 노래졌다. 더 이상 서 있지 못하고 바닥에 주저앉았다.
잠시 숨을 돌린 뒤 나는 교무실에 올라가 담임선생님을 찾았다. 평소에 선생님에게 말도 거의 걸지 않던 학생이 창백한 표정으로 찾아오니 선생님도 놀라신 눈치였다.
"제가 ··· 몸이 너무 안 좋아서 그러는데 병원 좀 다녀와도 될까요?"
"어, 어 그래. 빨리 다녀와."
다행히 별다른 말씀은 없으셨다. 나는 바로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 병원에 가기 위해 횡단보도를 건넜다. 길을 건너며 출근하시는 다른 선생님을 만났지만 평소와 달리 어디를 가냐고 묻지 않으셨다. 그만큼 내가 많이 아파 보인 것 같았다. 나는 가장 가까운 가정의학과를 찾아 들어가 바로 진료 접수를 했다.
진료실에 들어가 증상을 말씀드리니 과로로 인한 피로 누적 때문에 생긴 증상이라고 말씀해주셨다. 4시간 정도 수액 주사를 맞으면 괜찮아질 테니 걱정 말라는 말을 덧붙이며. 4시간 ······. 수능이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서 공부를 해야 할 시간에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병실 침대에 누워있을 생각을 하니 마음이 불편했다. 정말 이래도 되는 걸까.
나는 병실 침대에 누워 오른팔을 걷었다. 곧 간호사님께서 수액과 수액을 걸어놓을 거치대를 함께 가져오셨다. 시선을 사로잡는 뾰족한 주사 바늘. 그대로 나의 팔목에 꽂히며 수액이 나의 몸속을 타고 흘러들어오고 있음이 느껴졌다.
"푹 주무시고 쉬세요!"
나밖에 없는 병실은 매우 쓸쓸하고 조용했다. 내 평생 과로로 링거 주사를 맞게 되는 날이 오는구나. 주사 바늘을 꽂은 채 누워있는 내 처지가 안쓰럽기도 하고 이렇게까지 고생한 나 자신이 대견스럽기도 했다. 나는 멍하니 창문 밖을 바라보았다. 우리 재수학원 건물이 눈에 보였다. 나도 저기 있어야 하는데 ······. 몸은 편하게 누워있었지만 마음은 계속 불편했다.
누워있는 상태로 많은 생각을 했다. 교실에 돌아가면 오전에 하지 못한 공부 목표량은 어떻게 채울지부터 어느새 빠르게 흘러가버린 지난 시간들에 대한 놀라운 경외심까지. 항상 공부를 하고 있던 이 시간에 침대에 누워있으니 잡생각이 많아졌다. 그리고 오전에 깨어있으려고 노력했던 지난 수많은 시간들이 무색하게도 얼마 안 있어 바로 곯아떨어졌다.
3시간 뒤 눈을 뜨니 다행히도 몸이 멀쩡해졌다. 비록 그동안 공부는 하지 못했지만 그만큼 재충전의 기회를 얻은 것 같았다. 나는 곧바로 교실에 복귀해 오전에 달성하지 못한 계획을 서둘러 수정했다. 마음속으로 남은 시간 동안 더 열심히 할 것을 다짐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