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고를 관찰하는 사람의 자리

성과의 세계와 효율의 언어

by 수한가로

오전 7시, 환승역의 계단은 일정한 박자로 움직이는 발소리로 가득 차 있다. 출근길 전철 안, 40대 가장은 덜컹거리는 진동에 몸을 맡긴 채 초점 없는 눈으로 스마트폰의 푸른 빛을 응시한다. 무한히 반복되는 업무의 굴레 속으로 자신을 밀어 넣기 전의 유예 시간이다.


같은 시각, 어느 집 주방에서는 50대 어머니가 아무런 표정도 없이 쌓인 그릇을 닦아낸다. 물소리와 그릇 부딪치는 소리만이 정적을 메울 뿐, 그 행위의 끝에 무엇이 남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어른들의 하루는 무언가를 위해, 혹은 누군가를 위해 더 생각할 틈 없이 달리고 수행하는 궤적들의 집합이다. 그 무표정한 질주 속에서 질문은 사라진다. 나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나의 생각은 어디에서 시작되어, 어떤 과정을 거쳐,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가.


​이러한 풍경은 고스란히 교실로 이어진다. 다음 해를 준비하는 겨울 방학 특강의 현장은 어른들의 질주가 대물림되는 거대한 전장이다. 더 많은 문제와 더 많은 개념을 쏟아부어야만 불안을 잠재울 수 있는 자리다. 학원은 양의 극대화가 곧 효율적인 대비라고 말하고, 부모들은 그 속도전에 기꺼이 동조한다. 이번 방학이 성적을 뒤집을 마지막 기회라는 절박함이 모두의 눈에 서려 있다.


이 밀도 높은 효율의 세계에서 '생각하는 시간'은 사치로 취급되며 설 자리를 잃는다. 찰나의 통찰이 스치듯 발생해도, 그것은 잠시 생겼다 가버리는 바람처럼 누구의 관심도 받지 못한다.


아이들의 생각이 어디로 흐르고 있는지, 그 내밀한 궤적을 궁금해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성과라는 절대 권력 앞에서 사고는 그저 점수를 위한 연료로 소모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