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입사한지 한 달 후 쯤의 일이다.
어쩌다 본사 신입사원 간담회에 참석하게 되었다. VIP 식당에는 이미 다른 팀 사원들이 앉아 있었다. 잠시 후 본사 인사팀 사회공헌 담당 상무가 들어오더니 편하게 앉으라고 말했다.
상무님은 요즘 신입사원들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회사 생활에 고충은 없는지 자유롭게 얘기하기 위해 이 자리를 마련했다고 했다. 이윽고 정갈하게 세팅된 궁중 떡볶이와 육개장, 오징어 젓갈과 불고기, 오곡밥 정식이 식탁 위에 차려졌다.
"자 다들 들어요."
상무님이 한마디 하고 계속 얘기를 이어갔다. 삼성에 오니 어떠냐, 주변에서 뭐라고 하냐, 여기 빌딩 멋지지 않냐, 뭐 이런 얘기들이었던 것 같다. 그런데 몇 분이 지나도록 아무도 수저를 들지 않았다. 10여 명의 사원들은 그저 미소를 지으며 상무님만 멀뚱멀뚱 쳐다보고 있을 뿐이었다.
나는 너무 배가 고픈 나머지 궁중 떡볶이 하나를 슬쩍 집어 먹었다. 달그락 소리에 상무님이 왜 다들 밥을 먹지 않냐고 재촉을 했다. 그제야 사람들이 수저를 들기 시작했다.
"다들 회사 생활은 할만한가요?"
"네 좋습니다."
"일하는데 어려움은 없고?"
"네 없습니다."
"궁금하거나 필요한 게 있으면 기탄없이 말해요."
이런 지극히 형식적인 대화들이 오가는 중에 나는 문득 궁금한 게 생겼다.
"저 상무님, 예전에 대학 다닐 때 보면 삼성에서 시각장애인 안내견 지원 사업을 하는 게 참 보기 좋았는데요. 최근에 갑자기 사업을 축소한다고 하던데... 장기적 관점에서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그런데 상무님의 반응이 뜻밖이었다.
"기업의 상황에 따라 사회공헌을 줄이는 것도 기업의 재량이지. 신입이 회사 사정도 잘 모르면서 그렇게 함부로 말하는 게 아니야."
라며 화를 내는 것이었다.
순간 분위기가 싸해졌다. 옆에 앉아있던 다른 사원들이 마치
'그러게 저런 걸 왜 물어봐. 왜 이리 눈치가 없을까...'
라는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는 것 같았다.
아마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회사에서의 눈치가 무엇인지 체득한 순간이.
이후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다시 대화가 오고 갔다. 그날따라 VIP 식당의 밥은 유독 퍽퍽했다.
2.
훗날 알게 된 성공적인 회사 생활의 제일 덕목은 학벌도, 스펙도, 업무 실력도 아닌 바로 눈치였다.
우리는 눈치가 발달한 민족이다. 논리나 분석력보다도 '눈치'를 더 소중히 여기는 것이 우리의 한 사고방식이다. 눈치는 언제나 약자가 강자의 마음을 살피는 기미며, 원리 원칙과 논리가 통하지 않는 부조리한 사회에서는 없어서 안 될 지혜다. 중요한 것은 그들의 의중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재빨리 눈치로 알아내는 일이다. 내놓고 물을 수도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외국인들은 지위를 막론하고 그것이 커먼 센스(Common sense)에 의하여 양보도 하고 타협도 한다. 사장도 일단 부하 직원의 말에 타당성이 있다고 믿으면 솔직히 그것을 인정한다. 그러나 우리는 만약 윗사람에게 커먼 센스를 가지고 따지려 들면 '말대답'이나 혹은 '덤벼든다' 해서 혼이 난다.
(흙 속에 저 바람 속에, 이어령)
출근하자마자 부장님 눈치 봐서 보고 타이밍을 잡고, 회의시간에 상무님이 소련 말을 해도 한국말로 알아듣고, 눈칫껏 식당 좌석배치부터 수저와 물컵 세팅, 고기가 적당히 구워졌는지도 살피고, 다음 날 해장국집도 알아서 알아보는 눈치가 필요하다. 이렇게 직급이 오를수록 눈치도 늘어나고 눈치가 늘어날수록 직급이 더 빨리 오른다.
눈치의 사전적 정의는 다음과 같다.
1) 속으로 생각하는 바가 겉으로 드러나는 어떤 태도
2) 남의 마음을 그때 그때 상황으로 미루어 알아내는 것
전자는 눈치를 주는 것이고, 후자는 눈치를 보는 것이다. 위에서는 눈치를 주고 아래에선 눈치를 본다.
이러한 '눈치보니즘'은 사무실 곳곳에 침투해 있다.
눈치보니즘 : 눈치 보다 + ism
가장 기본적인 업무에 대한 의사결정부터 눈치로 시작한다.
임원은 옳고 그른 것이 아닌 좋고 싫음으로 의사결정을 한다.
논리보다는 선호가 중요하다. 논리는 사후적으로 눈칫껏 만들어진다. 그 결과 사람들은 필요한 일이 아닌 임원이 좋아하는 일만 찾는다. 니편 내편 눈치 싸움이 횡행할 수밖에 없다
회의 시간에는 임원 혼자 계속 이야기하고 실무자들은 눈치 보며 필기한다. 당신의 말을 열심히 받아 적고 있으므로 나는 놀고 있는 게 아니라는 무언의 시위를 한다. 그러나 막상 회의가 끝나면 서로 눈치 보며 일을 떠넘기느라 바쁘다.
회의 중엔 모두가 열심히 받아 적지만 일은 진행되지 않는 아이러니.
새로운 일이 생길 때마다 절반은 R&R (Role & Responsibility) 싸움으로 소모한다. (사실은 절반이 아니라 거의 대부분이다) 네 일이냐 내 일이냐 눈치만 보다 몇 주가 훌쩍 지나간다.
상사의 입은 "일찍 퇴근해~"라고 말하지만 그의 눈은 "일찍 퇴근해?"라고 눈치를 준다. 반면 부하는 하루 2시간 일하고도 10시간 앉아있는 효과를 위해 무던히도 눈치를 본다.
이처럼 우리들은 하루 종일 눈치보니즘에 사로잡혀 에너지를 소진해 버린다. 어쩌면 눈치 보는 게 너무 피곤한 나머지 오늘날 임원들은 그저 왕회장님 말씀을 코란처럼 신봉하는 독일병정이 될 수밖에 없었는지도 모르겠다. 애석한 일이다.
눈치보니즘이 만연할 때 어떤 일이 발생하는지는 역사에도 잘 나타나 있다. 그런 점에서 이어령의 다음 말은 지금도 여전히 의미심장하다.
임진왜란이 일어날 때만 해도 우리는 오직 일본의 침략 여부를 눈치로만 살피려 했다. 정탐꾼들은 반년이나 그곳에 머물러 있었으면서 기껏 보고 온 것은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눈뿐이었다. 그야말로 눈치만 보고 온 것이다.
임금 앞에서 국가의 존망을 판가름하는 그 정보를 아뢰는 자리에서 황윤길은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눈이 광채가 있는 것으로 보아 아무래도 우리나라로 쳐들어올 것 같다"고 말했고, 김성일은 반대로 "그의 눈이 쥐새끼처럼 생겼으니 결코 쳐들어올 인물이 못 된다"고 했다.
일본 사신들이 창의 길이, 생활양식 등 과학적으로 세밀하게 정탐해 간 것에 비해, 우리 사신들은 말 그대로 눈치만 보고 있었던 것이다.
(흙 속에 저 바람 속에, 이어령)
<참고서적>
흙 속에 저 바람 속에, 이어령, 문학사상사, 200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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