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오, 오 오 오빠를 사랑해!
아, 아 아 아 많이 많이해!"
신입 연수원 강당에 소녀시대 'Oh'가 쩌렁쩌렁 울릴 때, 우리는 모두 하나가 되었다.
팀별 장기자랑 시간. 언제 연습했는지 여자 동기들의 완벽한 - 그 당시에는 이상하게 완벽해 보이던 - 춤사위에 나는 심장이 두근거렸다.
"전에 알던 내가 아냐 Brand New Sound!"라는 가사처럼, 우리는 연수원에서 브랜뉴 신입으로 모두 새로워졌다.
우리 팀은 밤새 연습한 '오렌지 캬라멜'의 '마법소녀'를 육중한 중저음의 군무로 선보였다. 연수원에 있으면서 온갖 걸그룹 노래들을 섭렵했다.
어쩌면 걸그룹이야말로 회사생활의 맨 첫 관문일지도 모른다.
합격의 기쁨, 새로운 시작, 그리고 3주간 갇혀 있는 청춘남녀들.
연수원은 썸남썸녀가 태어나기 완벽한 조건의 환경이었다. 처음 만나 팀별 자기소개를 할 때부터 이미 남 몰래 눈빛이 오고 간다. 삼시 세 끼 밥 먹을 때 항상 옆자리에 앉고 회의할 때도 항상 둘이 늦게 들어온다. 나중에 사진을 보면 항상 둘이 나란히 찍혀 있다. 모두가 눈치 채지만 아무도 대 놓고 말하지는 않는.
그러면서 대학 시절부터 사귀던 커플이 헤어지고 새로운 연수원 커플이 탄생하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2.
연수원 입소날.
밴드부 출신의 긴 머리의 주진행 선배가 마이크를 잡고 말했다.
"자 여러분, 축하합니다.
여러분은 수천 대 일의 경쟁률을 뚫고 이 자리에 온 삼성의 미래를 책임질 핵심 인재들입니다!"
"우오아아-!"
순간 이백여명의 동기들은 함성을 질렀다. 나는 문득 군대 신병훈련소 시절이 생각났다.
매일 6시 기상 새벽 2~3시 취침.
연수원 생활은 곧 적응되었다. 군복처럼 지급된 회색 트레이닝복에 파란 넷북 가방이 우리의 유니폼이었다. 2월의 칼바람이 살을 에는 날씨에 야외 극기 훈련을 하며 벽을 기어 오르고 인간 피라미드를 만들었다. 밧줄에서 미끄러져 훌쩍이는 여자 동기를 다독이며 우리는 팀워크를 다져나갔다. 깔끔한 식당에서 먹는 연수원의 밥맛은 유독 좋았다.
낮에는 강의를 듣고 밤에는 팀 프로젝트를 준비하며 다음 날엔 발표하는 하루의 연속이었다.
삼성의 비전과 가치, 창업주의 성공신화, 초일류 제품의 화려한 성과 등. 웅장한 관현악이 깔리는 거대한 영상이 점점 클라이맥스로 치달았다. 마지막엔,
"삼성이여, 크고 강하고 영원하라!"
라는 성우의 핏대 선 포효가 온 강당을 뒤흔들었다.
옆에 있던 동기가 속삭이며 말했다.
"이러다 진짜 파란피가 주입될 것 같아."
대부분은 감격했고, 일부는 냉소했으며, 몇몇은 무관심했다.
그러나 다들 제각각이었던 우리는 어쨌든 조금씩 파랑으로 물들어가고 있었다.
그 와중에 나는 덩그러니 나와 혼자 복도 벤치에 앉아 있곤 했다. 허리가 아파서인지 강의장 공기가 답답해서인지, 나는 점점 이 곳이 내게 영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슨 만용이었을까. 당시에는 그저 일을 빨리 하고 싶을 뿐이었다. 과연 내가 만날 진짜 일은 무엇일까. 글로벌 시장을 주도하는 대한민국 최고 기업에서의 일이란 내게 어떤 가르침을 줄 것인가.
3.
연수원의 마지막.
드디어 고대하던 사업부 배치가 발표되는 날이다.
이젠 학생 티를 벗고 완연한 사회인처럼 보이는 우리는 이전보다 더 화려한 대강당에 모였다.
삼성그룹 인사팀 부사장이 간단한 축하 인사를 전했다.
"그동안 수고 많았습니다.
여러분들의 지난 연수원 생활 성적과 지망한 내용을 반영하여 사업부를 배치했습니다.
부디 건투를 빕니다."
강당은 고요해졌다. 내 인생이 걸린 일이다. 전에 없던 긴장감이 감돌았다.
이윽고 한 사람씩 호명되었다. 우리는 차례대로 무대 앞으로 나와 수령장을 받기 시작했다.
"이영희, 무선 사업부"
'무선'이 호명되자 강당에는 "우와~" 하는 탄성이 들렸다. 호명된 동기는 입이 귀에 걸려 당당하게 걸어나갔다. 질시와 부러움의 시선이 쏠렸다.
"김철수, 생활가전 사업부"
이번엔 '생활가전'이 호명되었다. "아..." 하는 탄식이 들렸다. 사람들이 웅성거렸다. 그 동기는 설마 하는 표정으로 일어섰다. 수령장을 받고 들어가는 그의 어깨가 유독 무거워 보였다.
그땐 말할 수 없었지만 우린 이미 알고 있었다. 흔히 통용되는 사업부별 선호도가 정해져 있다는 것을.
시대마다 돈을 가장 잘 버는 사업부가 늘 1 지망이었다. 보다 유리한 커리어, 핵심 사업부 출신이라는 명성은 물론 동급 최고의 보너스가 따라오기 때문이다.
90년대 국가 산업을 주도하던 반도체 신화 시절엔 반도체 사업부가 1 지망이었다. 2000년대엔 TV가 글로벌 1위를 석권하면서 VD (Visual Display, 영상 디스플레이) 사업부로 넘어갔다. 그리고 지금은 무선사업부가 절대 강자로 군림한 것이다.
간혹 SW 콘텐츠나 헬스케어 같은 신사업 분야의 미래를 보고 용기 있게 지원하는 자들도 있었지만, 대다수의 여론은 바로 지금 현재 잘 나가는 곳뿐이었다.
애석하게도, 나는 그 '용기 있는' 지원자 중 한 명이었다. 아직 순진했던 나는 다가올 미래는 구글과 같은 창의와 혁신의 SW 산업에 달려 있다고 보고, 삼성의 'SW 콘텐츠' 사업을 위해 야심 차게 신설된 MSC(Media Solution Center)에 지원하였다.
실은 사업부 설명회에서 MSC는 '삼성의 구글'이라 일컬어지며 수염도 기르고 칼퇴근도 많은 자유로운 분위기라는 말에 낚인 이유가 더 컸지만. 물론 너무나 당연하게도 막상 일하게 된 MSC는 전혀 구글 같은 곳은 아니었다.
나중의 일이지만, 공교롭게도 내가 속했던 팀은 1년 뒤 무선사업부로 전환 배치되었고, 훗날 MSC는 신설된지 6년 만인 2014년 12월 결국 해체되었다.
어쨌든 당시 나는 MSC 배치라는 수령장을 받아 들고 이중적인 생각에 빠져들었다.
무선이 아니라는 열등감과 생활가전이 아니라는 우월감.
이 두 가지가 뒤섞인 묘한 우열감을 느꼈던 것이다.
그렇게 수령장을 받아 든 순간 우리들은 이미 은연중 잘 나가는 애, 못 나가는 애를 구분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수령장을 받기 전과 후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다. 우리가 지난 3주간 교육받은 상생과 협력, 동기애와 인류의 행복이라는 가치보다, 오늘의 배치 결과가 더 많은 것을 말해주는 것 같았다.
무선과 생활가전.
이 두 가지 갈림길처럼 우리의 앞날은 결국 돈과 경쟁으로 갈린다는 것을.
명문대와 지방대,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스펙 경쟁을 뚫고 여기까지 왔지만 전쟁은 이제 시작일뿐이었다.
삼성과 비삼성을 가르고, 삼성 '전자'와 '후자'를 가른다. 전자 안에서 무선과 비무선을 가르고, 무선 안에서도 주류와 비주류, 또 그 안에서도 핵심 파트와 비핵심 파트를 가른다.
이렇게 영원히 이유도 모른 체 A급과 B급을 가르는 프레임에 갇혀버린 우리들.
그렇게 연수원이 끝나고 우리의 로망스도 끝났다는 것을.
우린 아마 그때 깨달았을까?
<퇴사의 추억> 단행본이 출간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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