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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호 SUHO May 08. 2020

어버이날 카네이션을 선물하는 이유

잊지 말아요, 꽃보다 당신입니다

어린이집 교실 문이 열리자 아이는 빨간 카네이션이 담긴 봉지를 들고 저에게 부리나케 달려왔습니다.



출처: 내가 찍음



"아빠, 이거 카네이션이야. 내일 어버이날이래."

고작 여섯 살인 이 녀석이 어버이날의 의미를 정확히 알지는 못할 것입니다. 그저 엄마 아빠에게 빨간색 꽃을 달아주는 날로 알고 있겠죠.

"우와~ 고마워. 우리 아들 효자네.^^"

그런데 '효자'라는 단어를 꺼내자마자 갑자기 몸속 구석에 처박혀 있던 '효자 세포'가 제게 말을 겁니다.

"ㅋㅋ 어버이날의 의미? 정작 너는 제대로 알고 있긴 하니?"

뼈를 맞았습니다. 틀린 말이 아니거든요. 지금까지 무려 마흔 번의 어버이날을 보냈지만, 저는 어린 시절, 아니 서른이 훌쩍 넘을 때까지도 아이와 다를 바 없었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5월이 되면 어버이날을 핑계로 고향에 내려가 친구들을 만났습니다. 밤새 먹고 달리다 술에 취한 채 거리 좌판에서 판매하는 싸구려 카네이션을 사들고 집에 들어갔죠. 숙취에 머리를 부여잡고 일어나 부모님께 카네이션을 드리며 의기양양했던 기억이 납니다. '부모님을 위해 카네이션을 준비하는 자식=효자'라는 프레임에 빠져 있었나 봐요. 그러고 보니 저는 '왜 어버이날에 카네이션을 주는지'도 모르고 살아온 것 같습니다.

부랴부랴 카네이션에 대해 찾아보기 시작했습니다. 카네이션의 유래를 알아보니 대략 이렇습니다.


1905년 미국의 한 교회학교 교사인 안나 자비스(Anna Jarvis)의 어머니는 '전쟁으로 자녀를 잃은 어머니'들을 위로하는 모임을 만들었습니다. 안나는 어머니의 숭고한 뜻을 기리기 위해 추모모임을 가졌고, 이 모임에서 평소 어머니가 좋아하던 카네이션을 교인들에게 나눠줬죠. 이때부터 카네이션은 '어머니에 대한 사랑'을 상징하는 꽃으로 불리며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어머니를 기리는 모임'은 이후 미국 전역으로 퍼져 나갔으며 1914년 윌슨 미국 대통령이 5월 둘째 주 일요일을 ‘어머니의 날’로 정하면서 기념일이 되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지난 1955년 매년 5월 8일을 ‘어머니날’로 제정했으며 1973년 ‘어버이날’로 지정되었죠.

참고: ‘어버이날=카네이션’, 왜?… 노란 카네이션 피해야 하는 이유(2018.05.08. 헤럴드경제)

안나는 어머니가 좋아하던 카네이션을 통해 어머니를 추억했습니다. 그것이 우리가 어버이날이 되면 부모님께 빨간색 카네이션을 선물하는 이유입니다. 만약 안나의 어머니가 장미를 좋아했다면 지금 우리 부모님들의 가슴에는 장미꽃 한 송이가 달려 있을지도 모릅니다.

노란 카네이션은 부정적인 의미가 있으니 피하라고 합니다. 하지만 이렇게 카네이션의 유래를 살펴보니 사실 꽃의 종류나 꽃말이 중요하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어버이날에 카네이션을 선물하는 행위는 단순한 '도구'이지 '본질'이 아닙니다. 핵심은 '부모를 기억하는 것'에 있거든요. 

우리는 흔히 효도의 척도를 이런 질문으로 평가하곤 합니다.

"부모님께 자주 안부 전화를 하시나요?"
"부모님을 얼마나 자주 찾아뵙나요?"
"부모님께 용돈도 많이 드리나요?"

그렇지만 안나의 일화는 우리에게 이런 질문보다 훨씬 더 근본적인 과제를 던져 주는 것 같습니다. 부모님을 얼마나 자주 기억하는지. 그리고 그 기억 속에 진정한 감사의 마음이 들어 있는지를 말이죠.

우리는 하루에 몇 번이나 부모님 생각을 할까요? 부끄럽지만 저조차도 부모님에 대한 생각 없이 지나가는 날이 많습니다. 제 자식 생각하는 것에 비하면 정말 1/100도 안될 것 같아요. 아무리 내리사랑이라지만 조금 심하긴 합니다.

의기양양하게 카네이션을 들고 뛰어오는 저 꼬맹이의 얼굴을 보고 있자니 세상 흐뭇합니다. 하지만 제가 벌써 카네이션을 받을 나이가 되었다는 사실이 조금은 어색하기도 합니다. 동시에, 나의 부모님께 카네이션을 선물하지 못할 날이 점점 가까워지고 있습니다. 불편하지만 이것 역시 사실입니다.

카네이션의 유래를 알고 싶어 시작한 글이 삼천포로 빠지기 직전입니다. 얼른 마무리를 해야겠습니다.

저는 2주 전에 겸사겸사 고향에 다녀왔습니다. 이번 어버이날에는 이동하지 않을 작정이었습니다. 하지만 글을 쓰다 보니 생각이 바뀌었어요. 계획을 조금 수정해야 할 듯합니다. 문득 30년 후 내가 우리 부모님 나이가 되면, 그때의 제가 가장 원하는 것은 무엇일까 생각하게 되었거든요.

아마도 그때의 저는 지금 여섯 살 난 꼬맹이의 얼굴이 가장 보고 싶지 않을까요?

시간도 없고 먼 길이지만, 아내에게 전화를 걸어 봐야겠습니다. 양가 부모님을 뵈러 또 내려가자고요. 부모님이 제일 원하는 건 돈이 아니라 우리 가족의 얼굴일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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