견디어 내는 삶

<토지>中 두만네가 말날에 장을 담그는 모습을 보면서

by 날개 달 천사

봄이 되면 꽃이 피고, 가을이 되면 나무는 서둘러 잎을 떨어냅니다. 누가 알려 주지 않아도 때가 되면 제 몫의 시간을 살아내기 위해 자연은 부지런히 움직입니다. 이런 걸 ‘이치’라고 하지요.


자연에 ‘이치’라는 게 있듯 사람에게도 마땅히 그러해야 할 ‘도리’라는 게 있습니다. 그런데 기성이 아비 두만이는 ‘이치’와 ‘도리’를 돈과 바꿔 버렸습니다. 시커멓긴 하나 귀여움이 흐르는 두 아들을 낳아준 부인을 괄시하고, 집안의 과거가 부끄러워 옛적 인연들을 못 본 척 밀쳐 버립니다. 돈으로 신분도 세탁하고 싶어 하는 그의 오만함에는 끝이 없습니다. 참으로 거만합니다.


‘사람이라면 지켜야 할 이치와 도리’. 그 당연한 것을 저버린 채 살아가는 이들이 넘쳐나는 세상에서, 돈 앞에 눈이 먼 두만이의 행보는 더욱 애처롭고 안타깝게 다가옵니다. 마땅히 감사하고, 미안해하며, 고개를 숙이고 겸손할 줄 알아야 하는데, 그걸 저버리다니요. ‘사람’이길 거부하는 것과 다를 바 없습니다. 그만큼 ‘당연한 것’을 지키며 사는 것 쉬운 게 아님을 두만의 삶이 역설적으로 보여 줍니다.




자연은 무례한 인간에게 경고하기 위해 철저하게 ‘때’를 지키며 순환합니다. 거대하고 위대한 자연의 섭리 앞에서 인간은 더욱 겸손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이 단순하면서 준엄한 약속은 ‘사람답게 살라’는 자연의 묵직한 메시지입니다. 순응하며 산다는 것은 이기고 지는 게 아닙니다. 삶을 수용하는 태도이고, 때론 고통을 묵묵히 감내하는 용기이기도 합니다.


두만어미가 두꺼워진 손, 삐걱대는 허리를 곧추세워가며 느리게 메줏덩이를 하나씩 양지에 말리는 이유는 자연의 법칙과 삶의 이치를 알기 때문입니다. 비록 돈이라는 권력에 영혼을 팔아버리는 파렴치한 아들이지만, 어미는 오늘도 가족을 위해 수십 개의 메줏덩이를 말렸다가 털었다가 반복합니다. ‘도리’를 꿋꿋하게 지켜내는 어미의 뒷모습에서 감사함과 숭고함이 느껴집니다.


“모레가 말날인께 그날 소금을 풀어아겄다.”


소금을 풀어 장을 담그는 날, 새벽부터 가족의 1년 먹거리를 위해 정성스러운 의식이 시작될 겁니다. 목욕재계 후 독을 씻어 닦아 내고, 몇 년 동안 간수를 빼 온 애정 담긴 소금이 함께 독에 들어가겠지요. 물도 가장 깨끗한 약수일 겁니다. 먹는 것 하나를 준비하는 데에도 사람의 도리를 다합니다. 자연과 맞추어 살아갑니다. 기꺼이 순응합니다.



세상을 바꾸는 선구자나 부당한 것에 대응하며 알에서 깨어서 나는 사람도 존경스럽습니다. 하지만 그들 역시 삶의 ‘이치’를 거스르지는 않습니다. 관수도 석이도 알에서 깨어날 때가 되었고, 준비가 되었기에 폭풍전야처럼 숨죽이고 시기를 기다리고 있지요


“선이 니도 살림 있다고 빈치(자랑)하고 없는 사람 괄시하고 그런 일이 없도록 해라”는 두만 어미의 한마디가 묵직하게 남습니다. 나 하나만 생각하지 말고, 이웃과 세상에 맞추어 ‘도리’를 하라는 두만어미가 약삭빠른 게 아니라 ‘고개가 끄덕여지는 지혜’라서 이해가 됩니다.




때를 맞추어 사는 삶, 이치를 알고 도리를 아는 삶. 당장의 빠름과 눈에 보이는 결과 중심이기보다는 느린 듯하나 순리대로 사는 삶이 결국은 ‘해내는 삶’인 것을 알아갑니다.


장이 익어갈 때까지 두만네는 손가락을 접어가며 시간을 견디어 낼 겁니다. 장을 뜨는 날엔 또 묵묵히 된장을 치대어 정갈한 독에 담아 내겠지요. 기다리고 견디는 사람. 때를 아는 사람. 그렇게 살아가고 싶습니다. 흔들리지 않는 믿음으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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