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연 무엇이 우선일까요?
나는 고등학생 때 처음으로 강아지를 키우기 시작했다. 지금은 강아지별로 돌아간 나의 첫 강아지는 제비(미니핀, 남). 제비는 우리 네 식구의 사랑과 관심을 듬뿍 받으며 천수를 누리다가 2017년 1월에 생을 마감했다. 그리고 나와 남편은 2016년에 제리를 데리고 왔고, 친정 식구들은 제비를 그리워하다가 2017년 6월에 제비와 똑같이 생긴 미니핀 제트를 다시 키우기 시작했다.
나는 2019년에 험블이를 출산했고, 출산과 동시에 친정 근처로 이사를 와서 같은 아파트 단지에 살게 되었다. 산후조리원에서 퇴소하여 험블이를 집으로 데리고 와서 몇 달 뒤에 친정 식구들이 험블이를 보러 집으로 왔는데, 웃긴 건 그들의 우선순위가 침대에 누워 있는 험블이보다 제리에게 있었다는 데 있다. 일단 친정 식구들은 제리를 귀여워해 주고 나서야 험블이를 챙겼다. 지독한 강아지 사랑이 따로 없다.
내가 아직 산후조리를 해야 될 시기에는 아빠가 매일 제리를 산책시켜주었다. 험블이 때문에 산책을 제때 자주 못 나가는 제리는 그런 아빠를 엄청 반겼다. 듣기로는 제트는 하루에 산책을 6번이나 해서 산책 가자고 하면 귀찮아서 안 나간다고 한다. 배 부르는 놈. 반면 제리는 아빠가 올 때마다 오줌을 지리면서 펄쩍펄쩍 뛰어다녔다. 어차피 아기는 엄마가 돌보는 거니 육견에 도가 튼 식구들이 근처에 있다는 건 정말 큰 도움이었다.
문제는 개는 봐줄 수 있어도 애는 못 봐준다는 것. 엄마는 내가 험블이 만큼 아기였을 때 거의 할머니한테 맡겨서 키웠다고 했다. 그래서 아기를 다루는 법을 전혀 모른다는 것이다(!). 그러니 애 봐달란 말은 하지 말라고... 물론 육아를 하면서 조부모의 도움을 받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생각해선 절대 안 되지만 사람의 마음이라는 게 그런 말을 들으면 서운한 것이었다. 나도 전적으로 애를 봐달라고 할 생각은 전혀 없었고, 그저 몇 시간만 맡기고 밖에 나가서 커피라도 한 잔 마시고 싶은 것뿐이었는데 말이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누군가에게 의지하지 않고 나와 남편이 열심히 육아를 한 덕에 아이를 둘러싼 모든 의사결정과 훈육 같은 것들을 우리가 주체적으로 할 수 있게 되었다. 아무래도 사정 상 조부모에게 육아의 도움을 받게 된 친구들은 아이가 좀 자라서 적당한 때가 되었을 때 그 도움의 끈을 놓기가 애매하고 어렵다고 했다.
여하튼. 우리 친정은 개는 봐줘도 애는 못 봐주는 친정이다. 다른 조부모들은 손주가 태어나면 어떻게든 집에 더 찾아오려고 하고 아이를 품에 안고 안 놔주려고 한다는데 우리 친정은 제리가 산책을 나갔는지 안 나갔는지가 더 큰일이다.(당연히 마음은 손주에게 우선인 건 나도 안다) 그러니 얼마나 다행인지. 험블이에게 빼앗긴 관심과 사랑을 할머니 할아버지에게 채움 받고 있으니 우리 제리도 복 받은 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