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어나보니 개가 다섯 마리
우리 동네에는 진상견들이 있다. 그중 하나는 제리이다. 제리는 푸들이지만 타고난 성량으로 그가 짖으면 사람들은 어디서 대형 리트리버가 짖는 줄 안다. 설상가상으로 겁이 많아서 오토바이라도 지나가면 세상 떠나가라 짖고, 산책길에 마주치는 할아버지가 기침이라도 하면 바로 짖어버린다. 그런데 그 짖음이, 어떤 준비 과정(예를 들면 으르렁 거림) 없이 곧바로 본론으로 진입해버리는 짖음이라서 마주치는 사람들은 제리가 짖으면 진짜 가슴을 부여잡으며 놀란다. 그래서 나는 제리를 산책시킬 때 조금이라도 제리가 짖을 기미가 보이면 바로 리드 줄을 당겨서 제지하곤 했다.
그런 제리가 밖에서건 집에서건 짖고 있으니 우리 험블이는 아기 때부터 제리 짖는 소리에 훈련이 되어 버려서 제리가 짖든 말든 무시하고 자기 할 일을 하는 아이가 되었다. 집안사람들은 제리가 짖을 때마다 놀라는데 험블이는 놀라지도 않고 그냥 일상 소음 중 하나로 치부하곤 했는데, 그 모습이 신기하기도 하고 부모로서 매우 미안(?) 하기도 하다.
다른 진상견은 친정에서 키우는 제트다. 제트는 사람한테는 안 짖는데, 개들만 보면 엄청 짖어댄다. 제트 역시 천상 겁보이기도 하고 사회화가 덜 된 강아지라서 산책 나온 다른 개들이 200미터 멀리 보이기만 해도 짖기 시작한다. 그래서 아빠는 제트를 산책시킬 때 다른 개들이 산책 나오지 않는 루트로 데려가곤 했다. 그런 제트에게 험블이는 사람이라기보단 약간 동물에 가까운 모습이었는지 친정에 험블이를 데리고 갈 때마다 제트는 나와 남편에게는 전혀 짖지 않는데 험블이를 향해 엄청 짖었다. 그런데 우리 험블이는 이미 제리에게 단련이 된 아이가 아니던가. 제트가 짖든 말든 상관도 안 한다. 오히려 걸음마 보조기를 가지고 제트에게 돌진하면서 제트를 약 올리고 장난을 친다. 그러면 겁 많은 제트는 험블이를 피해 구석으로 숨기 바쁘다.
마지막 진상견은 엄마, 아빠, 아들로 구성된 푸들 가족이다. 이 세 마리의 푸들은 같은 아파트 단지에 사는 우리 이모네 가족이 키운다. 얘네들은 그냥 아무한테나 짖고 늘 짖는다. 같이 사는 이모와 이모부에게까지 짖을 정도니 말 다 했다. 오직 사촌언니한테만 복종하는 이 푸들 가족은 세 마리를 하루에 각각 두세 번씩 산책을 시켜야 해서 거의 하루 종일 번갈아가며 아파트 단지 안에서 볼 수 있는데, 어디서 개 짖는 소리가 요란하게 들리면 십중팔구 얘네들이다.
한 번은 험블이를 데리고 이모네 집에 간 적이 있는데, 이 세 마리 푸들이 험블이를 향해서 동시에 짖어대는 바람에 몇 분 머물지 못하고 나온 적이 있다. 짖기만 한 것이 아니라 험블이를 향해 순식간에 달려 들어서 험블이의 기저귀가 벗겨지는 아주 위험한 상황이 발생하기도 했다. 그 이후로 이모네 집은 가지 않았는데, 사실 그때도 험블이는 울지도 않고 아, 기저귀가 벗겨졌구나 하고 말았었다.
그렇게 험블이는 태어나자마자 다섯 마리의 개들과 친구(?)가 되었다. 사실 한 마리가 더 있다. 나의 친언니도 근처에 살고 있는데 언니는 고양이를 한 마리 키우고 있어서 험블이에겐 총 여섯 마리의 동물 친구들이 있다. 그래서 나와 남편은 곧잘 이런 상상을 하곤 한다. 나중에 험블이가 더 커서 여섯 마리의 동물들을 거느리고 이 동네를 활보하는 모습을. 그럼 아무도 험블이를 건드리지 못할 것이다. 이 진상견들이 다가오기도 전에 짖고 난리를 칠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