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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버라이어티삶 Jul 31. 2022

이제 그 가게는 안 가려고요...

사장 마인드(주인의식)와 알바 정신, 그리고 moment of truth

너무도 뜨거운 볕에 종일 에어컨 아래 숨어 있다가, 해가 지고 슬금 나가봤습니다. 아내와 아이들을 데리고 동네 새로 생긴 배스킨라빈스로 향했죠. 애들이 좋아하는 맛들도 다 있고, 쿠폰도 있고 해서 집 근처 새로 생긴 매장으로 향했습니다. 

잠깐 나갔다가 살이 녹는 것 같아서 바로 들어오게 만들었던 그 하늘...

어라? 무인 키오스크

매장에 알바 분들이 서너 분 있었는데, 이 분들은 아이스크림을 퍼서 전달하는 역할만 하는 것 같았습니다. 매장 한가운데 세팅된 무인 키오스크를 보고 흠칫 당황했지만, 이 정도는 평소 점심 먹을 때도 자주 쓰기 때문에 주문을 시작했죠.('배스킨라빈스에 직원이 없네' 기사 링크)

여긴 아예 직원이 없는 플로우 매장입니다. 오늘 이야기와 무관한 '기사'의 사진.

아이들이 먹고 싶어 하는 걸 넣고, 아내도 고르고, 저도 고른 다음 할인, 쿠폰, 상품권 등등을 적용시켜 가면서 계산하려는데 덜컥 막히기 시작합니다. 할인을 시키면 적립이 안되고, 상품권도 각 상품권의 종류를 눌러서 적용시켜야 하는 식입니다. 중간에 카운터에 왔다 갔다 하면서, 직원 분들께 물어가면서 힘겹게 주문을 다 넣었습니다. 그런데...


어버버.... 하는 사이에 키오스크는 기다리지 못하고 주문을 초기화시켜버렸습니다. 아이들이 '내 아이스크림!!!' 하며 징징 거리려고 하길래 밖에 내보내고, 다시 주문을 넣었습니다. 그래도 한 번 해 봤다고 어찌어찌 입력을 하고 결제까지 성공했는데 고갤 들어보니 알바 분들은 각자 폰으로 뭔가를 하고 있습니다. 제 주문이 들어가자 그제야 아이스크림을 퍼담기 시작합니다. 


지금 주문이 제대로 안돼서 여기서 한참을 이러고 있었는데, 충분히 보이고 들렸을 텐데...라는 생각이 들자 기분이 별로 안 좋습니다. 그래도 아이들과 다 같이 나왔으니 아이스크림 받아 나가려고 기다렸습니다. 아들이 자기가 좋아하는 망고 아이스크림 싱글킹이 먼저 나와서 받아서 나갑니다. 아이스크림 전해받을 때, '안 떨어지게 조심하세요~' 하는 인사말이 왠지 좀 귀에 걸렸습니다. 


다른 아이스크림을 다 받아서 나가는데, 아뿔싸...

아들의 망고 아이스크림이 그대로 바닥에 툭 떨어져 있습니다. 아마 혀로 핥으면서 먹으려 장난치다가 떨어졌나 봅니다. 애는 눈앞에서 울상이고...


혹시나 하는 생각에 매장으로 다시 들어가서, '죄송한데, 애가 매장 앞에 아이스크림을 그대로 떨어뜨려서요...'라고 하는데, 바로 '그래서 고객님, 아까 받아가실 때 조심하시라고 말씀을 드렸는데...' 그럽니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들어간 건 맞지만, 그 말을 듣는 순간, '아, 그래서 매장 앞에 아이스크림 떨어져서 녹고 있다고요-' 하니, '그건 저희가 치울게요-' 합니다. 뭐... 그 말을 기대한 건 아니지만, 말은 맞으니 돌아 나왔습니다. 


집에 오는 길에 아내와 말을 나누어 보니, 제가 느낀 것과 비슷하게 느끼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결론은 '베라를 평생 안 가지는 않을 테지만, 여기는 안 간다. 같은 거리에 있는 다른 매장으로 가자'였습니다. 


직원에게 주인처럼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니까

시급을 받으면서 매장에서 주인처럼 응대하기를 기대하는 것은 무리인 것을 알고 있습니다. 저도 회사에서 '사장처럼'은 일 못합니다. 심지어 사장님도 '창업자'가 아닌 다음에야 '경영자'이지 '오너'는 아닙니다. 


만약, 제가 여기 사장인데 이런 일이 있었다면 어떻게 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온 가족이 다 나와서 키오스크 앞에서 끙끙거리고 있는 걸 보고 가만있었을까? 아니, 그 장면에 눈에는 들어왔을까? 방금 떠간 아이스크림이 떨어져서 아빠가 다시 매장에 들어왔을 때 그냥 하나 더 퍼줬을까?

제가 아쉬운 상황에서 들었던 생각이지만, 제가 당사자라고 하면 '이랬을 것이다'라고 확실하게 말하기는 어렵네요.


회사에서 저의 태도를 돌아봅니다. 알바의 마인드...라고 하기에는 다 같은 직원이니까...

저 역시, 단지 '직원의 마음'으로 일들을 처리해 온 것 같습니다. 이런 생각이 들어서, 그 직원분들에게나 아이스크림을 엎은 아들이나, 주문하다가 어버버 한 제 자신에게나 아쉬움을 접어둘 수 있었습니다. 월요일부터는 좀 더 오너십을 갖고 업무에 임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도 앞으로 발걸음은, 같은 거리에 있는, 직원이 직접 주문받고 결제해 주는 베라 매장으로 향할 것 같습니다. 


키오스크는 정말 효율적인 장비인가?

글을 닫으려다가 문득 든 생각. 앞으로 고령인구가 더 늘어나는 것은 자명한데, 이런 도구 조작에 익숙하지 않은 고령층 고객들이 키오스크에서 좋은 경험을 하지 못해 브랜드나 매장에 등을 돌리게 되면 어떻게 될 것인가? (기사).


키오스크 한대가 400만원 정도 하고, 알바 분 2개월 급여로 1대를 살 수 있다는데 (기사) 이렇게 줄인 비용은 분명 cost savig 측면에서는 옳은 선택이겠습니다. 그런데, 익숙치 않은 경험으로 등을 돌리는 고객이 생기면 이건 좋은건가? 좋지는 않을텐데... 얼마나 나쁜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누가 아시면 댓글 좀...부탁드립니다. ^^





댓글 주신 분이 계셔서, 어제의 저를 좀 돌아볼 수 있었네요 :)

어제 그 상황에서도, 제가 고마워할 수 있는 부분이 있었는데, 당시에는 그게 안 보였네요. ^^;;;;

감사드립니다. 본문은 굳이 수정하지 않았습니다.


키오스크....는 여전히 제게 가끔 어렵습니다 ㅠㅡ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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