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명상이 필요한 이유
잘 다니던 글로벌 제약회사를 그만두고, 잠깐의 시간을 가진 후 새로운 회사로 출근한 지 가요.
'아직'이라고 강조할 만큼 스타트업의 호흡은 여태까지와는 많이 달랐습니다.
성장하고 있고, 성장해야 하는 운명인 회사라 제게 주어진 역할과 해야 할 일들은 명확했습니다. 되려 그거 받고 '알파' 더!라고 할 정도로 더더더 많은 일들을 기획하고, 정리하고, 지금 하는 일도 잘 되게 해야 했습니다.
게다가 왠지는 모르겠는지, 버스 정류장으로 한 정거장이 늘어났을 뿐인 통근시간이 거의 1.5배 늘어나버렸습니다. 아마 출근시간이 조정되어서 그런 거 같기도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새 회사 출근 후 지금까지 운동을 한 날짜가 거의 손에 꼽을 정도밖에 안됩니다.
하나의 일이 처리되어 삭제되는 속도보다 더 빠른 속도로 일들이 생깁니다.
Output 속도보다 input 속도가 빨라지니, 머릿속이 가득가득 차올랐습니다.
그래서 코로나 언택트 시절에 열심히 뛰던 조깅을 하러 뛰어나갔습니다.
음악을 들으면서, 유튜브 강의를 들으면서 달리기에는 이미 머리가 꽉 차 있어서 그냥 나갔습니다. 늦은 시간이지만,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들, 이미 달리고 있는 사람들과 함께 뛰다 보니 조금 달리고 숨이 가빠오기 시작합니다.
땀이 송글 솟을 때 즈음에는 낮 동안에 있었던 미팅과 업무에 대한 이야기들이 머릿속을 슉슉 스쳐 지나갑니다. 아! 맞다! 싶을 때는 잠깐 멈춰서 휴대전화에 기록하고는 다시 달립니다. 이렇게 5km 정도를 달리고 나니, 어지간한 '아! 맞다!'는 정리된 것 같습니다.
명상이 요즘 다시 유행이라고 합니다. 이런저런 이유로 마음이 힘든 사람들이 밖에서 치유를 찾다가, 이제는 안에서 답을 구하는 것 같습니다.
저는 명상은 잘 모릅니다. 책에서 읽은 방법을 적용해 보려고 애쓰다가 잠만 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명상은 '비워냄'이라고들 합니다. 아무 생각도 하지 않는 행위가 아니라, 아무 생각도 안 드는 마음이라고 어디서 들었던 것 같습니다.
거실에 누워서, 침대에 누워서, 아니면 일어난 직후에 해 보려고 해도 잘 안되던 그 상태가 최근에 달리기를 하면서 '이건가?' 하는 시점이 몇 번 있었습니다. 오늘도 그렇고요.
생각이 아예 안 날 수는 없지만, 숨 가쁘게 뛰다가, 생각나면 옮겨놓고 다시 다음 걸음을 옮기고 하면서 돌아온 집에서 마음이 개운해진 것을 보면 이게 명상인가 보다 싶습니다.
여태 상당히 많이 뛰어다녔는데, 그간 왜 이런 느낌이 그다지 없었나를 돌아보면
아마 '이어폰' 때문이었던 것 같습니다.
Input이 없는 상태에서 output으로 비워내야 머리든 몸이든 잘 비워지는 것 같습니다.
이어폰 없이 한 번 달려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