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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버라이어티삶 Feb 07. 2020

이 좋은 세상에, 혐(嫌)이라니...

좋은 것만 보고 들어 채우기도 짧은 인생에...

나는 '혐(嫌)'을 '혐(嫌)'한다.

싫은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것들을 싫어한다. 누구나 자기 기분을 안 좋게 만드는 것은 피하려고 한다. 하지만, 어쩔 수 없이 '혐'을 마주한 뒤 그것을 은근히 즐기게 되는 것이 '혐'이다. 사람들은 모이면 다른 사람을 흉보면서 동질감을 만들기도 하니까.  


'이 좋은 세상'이라는 말이 있다. 이 좋은 세상에는 가끔이지만 상쾌하고 깨끗한 공기도 있고, 밝은 태양, 사랑하는 가족, 좋아하는 음식, 보고 있으면 기분이 좋아지는 아름다운 것들이 가득하다. 이런 것들을 즐기기만도 사람의 시간과 에너지는 제한되어 있다. 너무 짧고 적다. 누구나 알고 있지만, 대부분 잊고 산다. 


나는 어릴 때부터 날 깜짝 놀라게 만드는 것, 징그럽거나 무서운 것들은 최대한 피하려고 노력했다. 그 시절부터 '이 좋은 세상에, 이 짧은 인생에, 재미있는 것을 즐기고, 예쁜 것만 보기에도 짧은 시간에' 왜 굳이 그렇게 나의 감정을 상하게 하는 것들을 마주해야 하는지 이유를  수 없었기 때문이다. 겁도 많았지만.


그런데, 회사라는 시간에서는 서로가 서로를 싫어하는 '혐-혐'이 생긴다.  

자주, 매일, 하루의 대부분을 보내야 하는 회사에서는 업무상으로든, 인간적으로든 각각의 사람에 대한 감정이 생긴다.  사람을 싫어하면 그는 내가 자기를 싫어하는 것을 느끼게 된다. 이때 스멀스멀 생겨나는 '혐의 감정'은 조직의 사기를 깎아 먹는 것은 물론, 개인의 마음과 정신, 영혼을 마모시킨다. 


생계형 직장인들에게 '혐혐'은 왜 생겨나는 것일까?

사람은 환경에 '지배'당한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영향을 많이 받는다. 삶의 상당한 시간을 바치는 회사라는 공간에서 만들어지는 감정은 분명 인생에 큰 영향을 준다. 대부분의 직장인들은 생계형 직장인들이다. 생활비 때문에 회사생활을 해야만 하는 사람들이다. 다들 형편이 어려운(일하지 않으면 수입이 없는) 사람들이 모여 있는 직장이라는 공간을 왜 '혐'이 뭉글뭉글 채우는 걸까?


젊은 시간에 나는 공포 영화나 혐오스러운 사진, 자극적인 기사 같은 것들은 혼자 힘으로 최대한 피하며 지낼 수 있었다. 하지만 나와 가족의 생계를 위해 매일 출퇴근을 반복해야만 하는 회사, 직장이라는 그 시간에서는 이런 '혐'을 피할 길이 없다. 


개를 가둬놓고, 바닥에 전기를 흘리면 처음에 개는 깜짝 놀라 펄쩍펄쩍 뛴다. 비명을 지른다. 찌릿한 그 전기 자극이 고통스럽기 때문이다. 그런데 개가 아무리 우리 안에서 날뛰어도 그 전기 자극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면 개는 포기 한다. 바닥에 전기가 흐르건 말건, 경련이 생기건 말건 그냥 피할 생각 자체를 안 한다. 포기한다.

어느덧 직장생활 10년 차에 그동안 그렇게 피하려고 했던 '혐'이라는 감정이 내 속에서 피어오르는 것을 더 이상 피할 수 없음을 알게 된 나는 그 실험견처럼 어느 순간 그런 '혐'의 자극에 더 이상 반응하지 않게 되었다. 


기억나지 않는다.


10년이라는 직장생활 동안에 어느 순간 내가 '혐'이라는 감정에 무반응이 되었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이것에 더 이상 반응하지 않게 된 다음부터는 마음이 힘들어하지 않는다. 


회사라는 조직은 학창 시절 때 보다 더 상대평가. 이 곳에서의 서열, 순위는 어쩌면 가족의 생계를 해할지도 모르는 무서운 것이다. 회사 생활이라는 것 역시 정해진 자리를 옆 사람과 뺐고 뺐는 그런 싸움. 때에 맞게 승진하지 않으면 생계가 위협받는다는 생각에 이 사람에게는 저 사람을 깎아내리고, 어제의 말을 오늘 반대로 말하기를 망설이지 않는 사람들을 많이 본다. 


거세당한 수소

누군가는 이런 반응(무반응)을 무기력하게 의욕이 꺾여버린, 마치 거세당한 수소처럼 보인다고 하기도 한다(물론 그들은 직접 말하지 않고, 다른 사람들에게 이야기를 흘린다). 의욕과 열정, 에너지가 넘치는 내가 '무기력해 보인다'는 말을 듣고 난 후 가만히 생각해 보았다. 

나는 정말 무의욕한가? 


나는 의욕이 넘친다. 그렇게 보이는 것은 '혐'을 일으키는 자극에 더 이상 반응 않기 때문이라 결론을 내렸다. 100세에 마무리한다면 벌써 절반에 가까이 서 있는 내 남은 시간을 더 이상 '혐'으로 채우지 않기로, 생계를 위해 인생을 바치는 공간과 시간을 마음과 영혼을 갉아먹는 '혐'으로 채우지 않기로 다시 한번 결심했다. 


매일 아침의 출근과 밤늦은 퇴근은 회사를 위한 것 이전에 나와 가족을 위한 것이다. 숭고한 그것을 위해 바치는 그 시간이 '혐'으로 오염되는 것은 원하지 않는다. 서로 사랑하며 좋은 것만 보고, 맛있는 것을 즐기고, 매일 웃기에도 짧은 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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