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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수현 Jun 26. 2021

에르메스는 백화점에 전시하지 않는다

마케터의 공간여행, 럭셔리 브랜드 투어

성수동 디뮤지엄에서 에르메스가 네 번째 헤리티지 시리즈로 전시회를 오픈했습니다. 성수동은 둘러볼 곳도 많아 당일 도시 여행으로 핫한 동네죠. 저는 섬세한 시선을 가진 디자이너 H를 초대해 함께 성수동을 여행했습니다.


이번 전시에서 궁금했던 것은 명품이 어떤 서사구조로 가방을 <작품>으로 전시하는가에 있었습니다.




명품 중에서도 하이엔드, 에르메스 이야기


아, 우선 에르메스가 어떤 브랜드인지 알고 둘러보는 것이 좋겠습니다. 그러려면 루이뷔통에서 그 시작을 풀어봐야겠군요.


루이뷔통이 속한 LVMH는 시가총액 기준 전 세계 1위 명품 브랜드입니다. 매출로는 1위지만 상업화로 명품이라는 단어와 거리감이 생기고 있긴 합니다. 인수 합병을 통해 회사는 거대해졌고, 생산량을 높이려 공장을 중국으로 돌려 마지막 10%를 이탈리아와 프랑스에서 완성하고 Made in France, Italy 태그를 붙입니다. 사실 이런 방법은 샤넬도 마찬가지입니다. 희소성을 조금만 포기하면 매출이 커지니까요.


반면에, 에르메스는 희소성을 위해 아직도 수작업으로 제품을 생산합니다. 특정 라인은 구매하면 그때부터 만들기 시작해서 2~3년 후에나 받을 수 있습니다. 게다가 구매실적에 따라서 VIP에게만 오픈하는 상품 라인이 있습니다. 성격이 급한 고객은 리셀러 샵에서 웃돈 몇 백을 얹어야 구할까 말까 한다고 하죠. 명품에서도 하이엔드에 속하는 브랜드입니다.


LVMH는 에르메스를 인수함으로써 기업의 하이엔드 라인업을 완성하고 싶었습니다. 에르메스의 지분을 확보하려 법정공방까지 가지만 약 4년간의 다툼 끝에 에르메스 인수를 포기하게 되죠.


그래서인지 에르메스에서 <장인정신>은 브랜드 스토리의 핵심가치입니다. 19세기부터 6대째 이어온 가죽 장인으로의 헤리티지가 스토리의 핵심이죠. 이번 전시회에는 2대 회장이 직접 디자인한 작품들, 1대 회장이 만든 디자인들을 소장품 형태로 전시했습니다. 수작업이기 때문에 작품마다 스토리가 있었죠. 가방을 다루는 에르메스의 손길이 예사롭지 않습니다. 그야말로 예술품을 다루는 큐레이터의 눈빛이 전시회에 고스란히 담겨있습니다.





헤리티지 네 번째 시리즈, 가방 이야기


19세기 가방부터 최신 가방까지 다양한 가방들이 전시되어 있고, 이 모든 가방에는 이야기가 하나씩 붙어있습니다. 하나의 가방이 작품처럼 전시되어 있습니다.


가방에 자크를 가장 처음 도입한 것이 에르메스라고 하던데 잠금장치만 모아놓은 전시공간이 따로 있었습니다. 가방의 이색적인 디자인만 모아놓은 공간에는 이런 디자인도 있나 싶은 신기한 컬렉션이 한가득 있었죠. 에르메스를 가진 셀럽들의 이야기가 벽면에 사진으로 펼쳐집니다. 가방 하나로 공간을 이렇게 채워냈습니다.



에르메스 가방 전시회의 가방 전시
에르메스 가방 전시회의 사진 전시, 그레이스켈리


1978년~2006년 장 루이 뒤마 회장이 직접 디자인한 <유머가 있는 가방> 전시


전시회는 조명을 굉장히 잘 썼습니다. 가방만 스포트라이트를 비추었고 내부는 다소 어두웠으며 선택한 음악들은 신비로웠죠. 아주 컴컴한 잠금장치 방은 음악의 리듬에 맞추어 잠금장치만 조명을 비추면서 비장한 분위기를 연출합니다.


한참 후에 디자이너 H가 전시장을 나왔습니다. 가방 하나마다 볼 것이 너무 많은데 저를 찾아 일찍 나왔다며 한 소리를 들었습니다.

"가방 하나하나가 이렇게나 섬세한 작품이구나를 느낄 수 있잖아요. 가방의 소재, 색상, 장식품, 손잡이, 버클... 만들려면 하나같이 어렵게 공을 들인 흔적이 보여서 그 섬세함을 들여다보는데 시간이 걸리는 게 당연하죠."


서로의 다른 시선을 확인하는 좋은 방법은 사진에 있습니다. 어떤 사진을 찍었는지 확인하면 확실히 그 차이를 느낄 수 있죠. 디자이너 H의 사진에는 가방의 디테일한 디자인들이 담겨있습니다. 반대로 저의 사진에는 이곳을 입장하는 방법, 제공하는 리플릿 구조, 공간의 동선과 전시디자인이 담겨 있었죠. 우리는 신기해하며 각자가 본 전시회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가방의 이야기가 담긴 사진들





희소성 마케팅


희소성은 마케팅에서 중요한 심리적 압박감입니다. 한정된 수량, 소량 판매, 한정된 기간, 리미티드 에디션 등으로 제한을 두는 희소성 마케팅은 가진 자와 갖지 못한 자 간의 격차를 크게 벌립니다. 몇 가지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얼마 전에 클럽하우스라는 오디오 소셜미디어 서비스가 붐을 이루었습니다. iOS만 론칭해서 애플 유저만 사용할 수 있었고, 초대에 의해서만 들어올 수 있습니다. 활동량에 따라 초대할 수 있는 쿠폰 수가 제한되었고요. 신세계 정용진 부회장이 직접 클럽을 오픈해 사람들과 대화한 이야기를 인스타그램에 올립니다. 현대카드 정태영 회장이 어제 클럽에서 들은 이야기를 페이스북에 올리죠. 그들만 아는 이야기에 사람들이 열광합니다. 클럽하우스 때문에 아이폰 중고 구매가 높아질 만큼 글로벌로 붐이 일었습니다. 페이스북에서는 초대를 구걸하는 사람들의 글이 올라왔고, 클럽하우스 유저가 된 것을 인증한 샷들이 올라왔습니다.


허니버터 칩도 희소성 마케팅의 사례이죠. 인기에 비해 생산량이 따라가지 못해 먹어본 사람 이야기는 SNS에 올라오는데 편의점에서 본 사람이 없었습니다. 허니버터 칩이 깔린 편의점을 SNS에 광고하면 그날 방문객이 증가하고 허니버터 칩은 동이 났습니다.


스타벅스는 여름 이벤트로 음료 17잔을 먹으면 레디 백을 굳즈로 증정하는 이벤트를 진행했습니다. 이 레디 백이 화제가 되면서 굳즈를 얻기 위해 여의도 한 지점에서 음료 680잔을 주문하고 가방만 챙겨간 고객의 목격담이 뉴스에 올라왔죠. 중고거래 사이트에서 중고 레디 백이 높은 가격으로 판매되기도 했습니다.



스타벅스 레디 백 @인터넷

아무나 당장 살 수 없는 희소성으로 명품의 프리미엄 격을 만든 에르메스는 전시회도 동일한 방법으로 마케팅합니다. 전시회 소식은 디자인과 럭셔리 전문 매거진에만 실었습니다. 크게 보도자료를 내지도, 디지털 광고를 하지도 않았죠. 평소에 에르메스 인스타를 팔로잉했거나 럭셔리에 관심 있던 고객들만이 핀포인트 대상이었습니다. 그렇게 방문한 사람들은 대부분 2040의 힙하고 쿨한 스타일의 고객들이었습니다.


전시회는 들어가는 입구부터 프로세스가 길었습니다. 선별된 사람만 들어간다는 느낌을 풍겼죠. 본인 확인 후 에르메스 색상의 종이 팔찌와 스마트폰 터치가 가능한 비닐장갑을 나눠줍니다. 같은 팔찌와 비닐장갑을 낀 힙한 사람들이 길게 줄 서있으니 그것부터가 궁금증을 자아내게 했습니다.


당연히 전시 디자인은 어느 각도로 찍어도 괜찮은 인스타그래머블 공간이었죠. 모두에게 알려진 전시회가 아니니 다녀온 사람들의 인증샷에는 희소성이 생겼고 굉장히 힙해 보였습니다. 다녀온 사람들의 이야기에 반응하는 2 입소문이 그렇게 확산됩니다. 전시회는 무료였지만 에르메스는  비용으로 희소성을  갈망할만한 사람들을 얻어냈습니다.


가방 하나로 다양한 연출을 담아낸 에르메스는 상업성을  빼고 작품으로 우리 앞에 나타났습니다. 브랜드의 프리미엄에 어떤 연출이 필요할지 영감을 얻고 싶다면 저는 럭셔리 브랜드를 둘러볼 것을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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